[조국 파문 확산]‘불공정 경쟁’에 등돌리는 여론
취업준비생 김여진 씨(23·여)는 26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황금 스펙’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말하며 목소리를 떨었다. 특히 조 후보자의 딸이 고교 시절 2주가량 인턴을 한 후 확장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E)급 논문에 제1저자로 등재된 것을 두고는 “취업을 위해 스펙 하나하나에 목맬 수밖에 없는 처지에 누군가는 아버지 ‘빽’으로 유리한 위치에 섰다는 게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 딸 논문 보도 후 20대 ‘부정’ 여론 6.1%P 올라
이날 20대 청년들은 조 후보자에 대한 비판을 넘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배신감과 박탈감을 드러냈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상징되는 신분사회에서 마지막 희망이었던 절차적 공정성에 대한 믿음마저 무너지자 ‘공정한 사회’를 내세웠던 현 정부에마저 실망을 느낀다는 얘기다. 회사원 김모 씨(27)는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특혜 입학 파문 땐 화가 났는데, 이번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라는 생각과 함께 힘이 쭉 빠진다”고 말했다.
같은 기간 부모 세대인 50대에서도 문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는 45%에서 51.6%로 증가했다. 슬하에 19세와 23세 자매를 둔 신현우 씨(50·여)는 “우리 아이가 밤을 새워 공부하는 동안 권력을 지닌 누군가는 손쉽게 대학에 진학했다고 생각하니 분노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20대 자녀 2명을 둔 이모 씨(54·여)도 “나는 왜 (조 후보자처럼) 아이들에게 스펙을 선물해주지 못했을까.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했다”고 말했다.
서울대생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 25일 게재된 ‘조 후보자 적합 여부’ 설문조사엔 26일 오후 10시까지 2305명이 참여해 2248명(97.5%)이 부적합 의견을 냈다. 청년들은 특히 조 후보자가 20대의 멘토 역할을 자처해 왔다는 점에서 실망이 더 컸다고 토로했다. 취업준비생 권모 씨(23·여)는 “조 후보자가 (2012년 3월 트위터에서) ‘개천에서 (용이 아닌) 가재나 붕어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고 했을 땐 서민의 입장을 대변해준다고 느꼈는데, 지금 보면 다 거짓말 같다”고 말했다.
○ “‘불공정 경쟁’ 비판을 진영 논리로 물타기 말라”
조 후보자에 대한 청년들의 비판 여론을 일각에서 ‘수꼴(수구꼴통)’로 폄하하자 20대 사이에선 실망을 넘어 분노의 목소리까지 나온다. 그간 문 대통령이 강조했던 정의와 평등의 원칙이 무너지는 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분출되는 비판을 진영 논리로 몰고 가려는 모습 자체가 구태로 느껴진다는 얘기다. 취업준비생 고은희 씨(26·여)는 “나는 문 정부의 지지자이지만 조 후보자는 정의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할 법무부 장관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26일 입장서를 내고 “(조 후보자는) 여러 의혹에 대해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후안무치의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원칙과 상식이 지켜지는 나라, 정의가 살아 있는 사회를 위해 사퇴를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밝혔다. 총학생회는 23일 제1차 촛불집회에 이어 28일 오후 7시 반에도 촛불집회를 열 계획이다. 주최 측은 첫 집회 이후 총학생회로 들어온 동문 후원금이 1300만 원이 넘었다고 밝혔다. 고려대도 23일에 이어 촛불집회를 다시 열기로 했다. 부산대에선 일부 학생들이 총학생회와 별개로 28일 오후 6시에 촛불집회를 열 계획이다.
서형석 skytree08@donga.com·김소영·황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