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초등생의 공부는 어떻게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초등기 부모가 아이를 잡고 있으면 당장은 결과가 만족스러울 수 있다. 학교에서 인정을 받는 것처럼 보이고 성적도 상위권일 테니. 부모가 꽉 잡으면 잡을수록 아이의 성적이 더 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부모는 자꾸만 아이를 혼자 해보게 하기보단 배워야 할 것, 배우는 방법, 배워야 할 분량 등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키워서 결과가 좋은 것은 딱 이때뿐이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많은 부모들은 “초등생 때까지는 공부를 정말 잘했는데, 중학교 가더니 뚝 떨어졌어요”라고 말한다. 시키는 대로만 공부한 아이들은 중학교에 가서 공부가 하기 싫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포기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하지만 아이나 부모가 성취에서 받을 타격이 가장 적을 때가 초등생 때다. 시행착오를 겪어도 충격이 덜하고 실패도 부모가 수용할 수 있다. 초등기는 시험도 많지 않고 대학을 가는 데 영향을 끼치지도 않는다.
이때 아이 혼자 계획도 세워보고 배운 것도 정리해보고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아, 나는 이런 것이 좀 안 되는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모는 아이에게 편하게 조언도 해주고 아이 또한 그 조언을 받아들이는 경험을 초등생 때 많이 해야 한다. 부모는 아이가 초등생보다 어릴 때 아이의 많은 것을 결정했다. 하지만 이때부터는 부모의 말이 누구나 인정하는 정답이라 할지라도 아이와 협의해서 결정하는 연습도 해봐야 한다. 그런 연습이 전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상의 거의 대부분의 주제가 공부가 되는 사춘기 때에 그런 조언을 듣게 되면, 열에 아홉은 비난으로 받아들여 아이와 부모는 사이가 나빠진다.
사실 초등생 공부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공부는 독서 습관이다. 무조건 책을 많이 읽도록 훈련시키라는 것이 아니다. 인쇄물을 통해서 자신이 궁금한 것에 대한 정보를 얻고, 더 폭넓고 깊이 있게 알아가는 연습을 시키라는 것이다.
초등생 때는 공부에 있어 아이나 부모 모두 서로를 파악해가는 시기이다. 부모가 아이의 특성을 파악하면 어떤 면은 자극하지 말아야 하고, 어떤 식으로 지도하면 좋을지 알 수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이를 직접 지도하면 부모 스스로 아이에게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어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도움을 주어야 할지 깨닫게 된다. 어떤 부모는 자신이 직접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여러 모로 좋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부모는 늘 결과가 좋기를 바라기 때문에 조급하다. 그런데 공부는 길게 봐야 한다. 길게 봐야 어떤 시기는 결과가 좋지 않아도 그 과정을 잘 이겨낼 수 있다. 초등생 때는 당장 결과가 좋지 않아도 조급하고 초조하지 않았으면 한다. 하루아침에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하지도 말았으면 한다.
초등생 아이의 부모는 느긋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시행착오를 충분히 경험하면서, 자기만의 공부 방식을 잘 찾아갈 수 있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