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28일 LG그룹 관계자는 “LG화학은 LG그룹 주요 계열사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조직으로 꼽혀 왔다”며 “지난해 11월 신학철 당시 3M 수석부회장을 LG화학 창립 후 첫 외부 인사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한 데 이어 또다시 외부에서 여성 임원을 영입해 곧바로 조직장을 맡기는 것만으로도 파격적인 결정”이라고 말했다. LG그룹은 LG화학뿐 아니라 LG전자, LG유플러스 등 주요 계열사의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대대적인 개편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SK그룹 역시 올해 말부터 인력 관리와 성과 평가 방식 등을 개편할 것으로 전해졌다. 연차가 쌓일수록 직급과 연봉이 올라가는 형식이 아니라 ‘직무·능력별 연봉 책정’으로 바꾸는 것이 최종 지향점이다.
○ LG “인재 확보에 조직문화 개선 필수”
재계에서는 LG, SK, 현대자동차 등 주요 그룹이 조직문화 개선에 나서는 가장 큰 이유로 인재 확보를 꼽는다. 재계에 따르면 LG그룹은 지주사 차원에서 계열사별 임금과 복지 관련 개선 방안을 다방면으로 모색하고 있다. 올해 말 정기 임원 인사 및 조직 개편에서 구체적인 윤곽이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LG가 조직문화 개선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LG화학이 그 첫 타자로 나선 데는 ‘LG화학-SK이노베이션 소송전’까지 번진 대규모 인력 유출에 따른 위기감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송은 표면적으로는 양사 간에 특허 및 기술 유출이 있었는지에 대한 사실관계를 가리는 것이다. 그러나 LG그룹 내부적으로는 ‘2차전지 연구개발(R&D) 및 영업 관련 핵심 인력 78명’의 단기간 이직 결정이 더 뼈아팠던 게 사실이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수년 동안 LG화학 2차전지 사업을 위해 밤낮없이 고생했던 인원들이 단순히 연봉 상승만을 이유로 이직을 결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글로벌 기업에서 인사 업무를 담당했던 권 상무를 영입한 것도 외부 환경 변화에 맞춰 조직문화, 인사 및 성과보상 체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위기감과 자기반성의 성격이 크다”고 말했다.
○ SK “인사제도 개편 없이는 원하는 인력 못 구해”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는 반바지를 입은 직원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재계에서는 복장 자율화 등 SK그룹의 근무환경 개선책이 일회성 행사가 아닌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LG그룹 등 국내 다른 주요 대기업들도 최근 인사제도 개편과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추진 중이다. SK이노베이션 제공
재계에서는 SK그룹이 이처럼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 배경을 ‘양질의 인력 채용’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임원 직급을 통일한 것도 외부 우수 인재를 ‘직급’ 때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지 못하는 문화를 없애기 위해서다. 기존 인사제도하에서는 실력을 인정받은 인공지능(AI) 관련 30대 엔지니어를 부사장으로 영입하면 내부 직급 체계에 혼란을 줄 수 있고, 그렇다고 상무로 뽑으면 실력에 비해 연봉이 적을 수밖에 없는 딜레마를 해소하겠다는 뜻이다.
최 회장 역시 “현재 조직 구조가 훌륭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영입하거나 기존의 개발자들이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동력을 주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동일 dong@donga.com·황태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