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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장이의 비애[이준식의 한시 한 수]〈22〉

입력 | 2019-08-30 03:00:00


문 앞의 흙을 다 구웠어도, 제 지붕엔 기와 한 조각 못 얹었네. 열 손가락 진흙 한 번 묻히지 않고도, 빼곡하니 기와 얹은 고대광실에 사는구나. (陶盡門前土, 屋上無瓦片. 十指不霑泥, 鱗鱗居大廈.)―‘기와장이(陶者·도자)’(매요신·梅堯臣·1002∼1060)
 
농부, 어부, 직부(織婦), 기녀, 병사 등의 애환이 한시의 모티프가 된 예는 적지 않지만 이 시는 드물게 기와장이를 등장시켰다. 고래등 기와집을 보면서 양손 가득 진흙투성이인 기와장이를 떠올린 발상이 독특하다. 대놓고 쏟아낸 불만이어서 시적 여운이나 풍자시 특유의 은근한 맛이 드러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대부의 입장에서 기와장이의 신고(辛苦)에 이 정도의 감정이입이 가능했다면 시인의 곰살가운 인간미는 일단 인정할 만하다. “온몸에 비단옷 걸친 자, 하나같이 누에 치는 사람이 아니더라”(장유·張兪)는 시구도 이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것으로 보아, 당시 시중에는 이런 가시 돋친 민요풍의 노래가 제법 유행하지 않았을까.

쉰 살 이후 늦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지방의 하급관리로 전전했던 매요신. 그가 살았던 북송 중엽의 시단은 화려한 수사, 난해한 전고(典故·규범이 될 만한 역사적 사례)를 즐겨 쓰는 풍조가 만연했다. 그 역시 이런 풍조를 비껴가진 못했으나 2900여 수나 되는 다작 시인이어서 소재의 스펙트럼은 꽤 넓었다. 특히 그는 서민의 궁핍이나 일상의 사소한 사물까지 포착해내는 재주가 남달랐다. 닭, 고양이, 복어, 모기, 지렁이, 골동품 등 기존 한시에서는 다소 생경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소재들을 두루 시에 담곤 했다. 웬만큼 섬세한 기질이나 소명의식이 없었다면 사대부 문인이 쉽게 접근하지 못할 소재들이다. 다소 과장된 감은 있지만 그에게는 “이백, 두보가 당시를 집대성했다면 매요신, 육유는 송시를 집대성했다”라는 평판이 따라붙기도 한다.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