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8월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 살균제와의 인과관계가 의심된다고 발표했고 11월 살균 효과를 지닌 화학물질의 독성이 잠정 확인됐다. 17년간 가습기 살균제 998만 개가 팔린 뒤였다. 현재 공식적인 피해신고자는 6309명, 전체 사용자의 1% 수준으로 추정된다. 원인은 밝혀졌으나 피해자와 그 가족은 길고 긴 고통의 터널로 들어섰다. 2011년 3월 결혼 9년 만에 어렵게 첫딸을 얻은 정모 씨는 3개월 뒤 아내를 잃었다. 임신으로 배가 불러 숨이 가쁜 줄만 알았지 건강을 위해 가습기 살균제를 꼼꼼히 챙겨 쓴 것이 비극을 낳을 줄이야. 가족을 잃은 슬픔, 내 손으로 가습기를 틀어줬다는 죄책감에 정상적인 삶을 꾸릴 수 없었다. 가습기 사용이 잦은 임산부나 영·유아 피해가 커서 가정이 해체된 경우가 많다.
▷사회적 재난에 대처하는 우리 사회의 실력은 형편없었다. 피부에는 안전한 화학물질이 흡입하면 독성물질이 된다는 것을 몰랐다. 아니, 기업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기업에서 돈을 받은 교수는 유해성 실험을 버젓이 조작했다. 공산품으로 분류돼 안전성을 검증하는 체계도 미비했다. 그 사실은 되레 정부에 면죄부를 줬다. ‘살균 99.9%’라는 광고를 믿고 구입했던 피해자들은 기업과 정부가 책임을 미루는 상황에서 법적 다툼에도 연이어 패소하며 절망에 빠져들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 따르면 피해자와 가족들의 66.3%가 지속적인 울분을 경험했고, 27.6%가 자살을 생각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