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평생을 대연평도에서 살았다는 팔순의 할머니는 손 내밀면 닿을 듯한 소연평도에 한 번도 발을 디뎌보지 않았단다. 갯벌에서 굴을 캐던 할머니는 소연평도를 가리키며 “저 섬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손바닥만 한 땅뙈기라 일거리도 없는데 갈 일이 없었지. 안 가봐도 여기서 훤히 보이잖아. 굴, 바지락도 없어”라고 했다.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는 형제 섬이면서 단절돼 있다. 여객선의 관광객과 해병대 장병 면회객조차 열에 아홉은 대연평도에서 내린다. ‘외롭지 않으면 섬이 아니라고 노래한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소연평도는 고독한 섬으로 남아있다.
우선 해안 둘레길을 걸었다. 섬을 한 바퀴 도는 데 40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세 바퀴를 연달아 돌고 마을로 향했다. 때마침 60대 노인이 바지락을 까고 있었다. 노인은 소연평도는 갯벌이 없어서 대연평도에 거주하는 동생네에서 바지락과 굴을 보내줘 먹고 있고,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만 해산물이 귀한 섬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여기도 살 만했어요. 조기잡이 배가 우리 섬에 들어와서 식수를 얻어 갈 정도로 물이 풍족했어요. 지금은 몇 안 되는 주민들이 마실 물도 부족해요. 티타늄 광산 채굴 때문에 산봉우리 두 개가 깎여 없어진 후로 물이 안 나와요. 젊은 사람들은 먹고살거리도 없고 불편하니 다 육지로 나가고, 노인들밖에 없어요.” 말을 이어가던 노인은 평생을 섬에서 살았기에 소연평도가 세상의 전부라고 했다.
대연평도로 돌아오고 한 달 후 부둣가를 거닐다가 소연평도에서 바지락 까던 노인과 우연히 마주쳤다. 동생네서 해산물을 얻어서 돌아가는 길이었다. 멀리서 본 소연평도는 낭만적이지만, 그 섬에서의 삶은 척박함을 이겨내려는 치열함이 있었다. 평생을 대연평도에 살면서 단 한 번도 소연평도 땅을 밟아보지 못한 노인의 모습도 겹쳤다. 80년을 살면서도 코앞에 있는 섬에 갈 일이 없었다는 그 할머니의 말이 이해됐다. 소연평도는 티타늄을 뭍사람들에게 내어주며 산봉우리 두 개가 깎여야 했고, 그 결과 마실 물조차 부족한 섬이 됐다. 그렇게 이웃한 섬과 섬 사이에서도 풍경으로만 남겨진 단절된 섬이 됐다.
사람들에게 풍족함을 줄 수 없는 땅으로 변했지만 그래도 남겨진 주민들을 묵묵히 품어주고 있다. 갈 곳도 머물 곳도 없어서 걷고 또 걷던 소연평도의 해안 길을 다시 걸어보고 싶다. 그때 그 섬에 있었음을 잊을 수가 없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