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부종합전형 공정성 논란 내신-세부특기사항-자기소개서 등 사교육으로 만드는 전형 논란 서울 주요大수시 중 40%나 차지… “정시로 뽑으면 강남 등만 유리해” 고교와 대학선 찬성하는 분위기도… 공정성 확보할 대책 마련 시급
김수연 정책사회부 기자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입시 컨설팅을 하는 A 씨가 지난해 자신이 맡았던 한 학생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고교 1학년 내신성적이 5등급에 불과했던 학생은 ‘컴퓨터 관련 자율동아리 구성’과 ‘애플리케이션(앱) 개발’ 등을 학생부에 올려 명문대 공대에 합격했다.
합격의 배경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여럿 있었다. 학생을 대신해 앱을 만들어준 외주업체, 남은 3학기 내신을 올려주기 위해 학원을 연결하고 스케줄을 관리한 학습 코디, 그리고 자기소개서를 완성해준 컨설턴트다. 과연 이 학생은 ‘학종’이 발견한 숨은 인재였을까, 아니면 부모의 재력과 정보력으로 빚어진 작품이었을까.
○ 고교생 논문은 옛말… 진화한 ‘학종 컨설팅’
A 씨의 설명이다. 그가 운영하는 학원은 인터넷을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학부모들. 요즘은 다음 달 시작되는 수시 원서 접수 때문에 학부모 상담이 밀려 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A 씨와 통화할 수 있었다.
그가 전해준 ‘학종 컨설팅’ 세계의 틀은 다음과 같다. 우선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의 기본 골격인 ‘내신점수’와 ‘세부특기사항(세특)’을 디자인한다. 컨설턴트는 내신을 대비하는 유명 학원과 강사를 섭외하고 주(週) 단위로 학습 계획을 세운다. ‘세특’에 반영되는 발표, 작문 등 수행평가 자료도 학생 대신 맡는다. 아예 다른 전문업체에 넘기기도 한다. A 씨는 “학원마다 가격 편차가 크지만, 이렇게 관리하는 것만으로 월평균 60만∼70만 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봉사활동을 기획해 주는 곳도 있다. 입시 경력 20년 이상의 사교육업체 대표는 “간판은 ‘진학 컨설팅’인데 봉사단체 몇 개 만들어 학생들의 봉사활동을 기획하고 실적을 채워주는 학원들이 있다”며 “비슷한 성적의 경쟁자가 있다면 결국 전공에 부합한 봉사활동을 많이 한 학생이 돋보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런 활동을 종합한 자기소개서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다. 대필을 해주는 건 명백히 불법이기에 ‘자기소개서 캠프’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 1박 2일 일정에 수강료는 200만 원에 이른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한 학부모는 “내신과 비교과 활동, 자기소개서까지 ‘학종’은 말 그대로 돈 잔치”라며 “없는 집에서 태어난 평범한 아이들은 정시의 좁은 문만 뚫으란 말이냐”고 말했다.
○ ‘정시 vs 수시’ 비율 논란… 줄지 않는 사교육
수시전형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위주의 ‘정시’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1997학년도에 도입돼 그 비중이 점차 확대됐다. 입학사정관제가 시작된 2008학년도에는 53.1%까지 늘었다. 지금은 수시 80%, 정시 20%로 입학생을 뽑는다. 서울 주요 10개 대학에서 수시의 한 종류인 학종의 비중은 40%로 높다.
경기 지역의 학부모 김지숙(가명·45) 씨는 “수시에서 떨어지면 바늘구멍인 정시를 통과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고교 3년간 아이들이 피 말리는 경쟁을 한다”며 “능력 있는 부모들은 정성평가 요소들을 사교육으로 채워 ‘학종’에 합격시킨다니 허탈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교와 대학들은 대체로 학종을 찬성하는 분위기다. 대학 측은 “정시로 뽑으면 강남 교육특구 출신이 확연히 많지만, 학종에는 다양한 지역의 인재가 선발된다”며 “교육 기회 균등화와 다양화에 기여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강북 지역의 한 고교 교장도 “학종이 도입된 덕분에 과거에 비해 서울대 합격자가 2배 이상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이 만만찮다. 익명을 요구한 17년 차 교사는 “1, 2등급 특별반 학생들에게 각종 수상 활동 관련 실적을 몰아 주니 진학 결과가 좋은 건 당연하다”며 “비교육특구에서 서울대 진학자가 많아졌다고 정시보다 더 공정하다는 건 현장의 사정을 모르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정시확대추진위원회의 박소영 대표는 “고1 첫 학기 실력으로 학생을 나누고, 어디에 속하느냐에 따라 교사의 진로지도 성의가 달라지는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를 통해 수시와 정시의 적정 비율을 찾고자 했다. 결국 교육부는 2022학년도부터 정시 비중을 30%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을 대학에 권고하는 것으로 소폭 수정됐다. 하지만 이는 민의를 거스른 결정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공론화 과정에서 1위를 차지한 대안은 ‘정시 비중 45% 이상’이었다.
○ 이상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 교육 현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미국에서는 입학사정관제의 역사가 100년이 넘었고, 한국은 이를 이상적인 모델로 삼아 왔다. 하지만 당초 미국에서의 출발은 그리 선한 의도가 아니었다.
하버드대와 예일대, 프린스턴대의 입학사정관제 역사를 다룬 ‘누가 선발되는가(The Chosen)’의 저자 제롬 카라벨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1920년대 프린스턴대 등 일부 대학이 유대인의 합격률을 낮추기 위해 학생의 개성(personality)과 기질(character)을 평가에 반영했다”고 서술했다. 박대권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는 “특정 집단을 배제하기 위해서 측정하기 힘든 요소를 평가에 반영한 게 입학사정관제의 출발이었다”며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겠다는 학종의 취지는 일부 인정하지만 현재는 그 비중이 과하다”고 말했다.
이런 전형은 적은 인력으로 단기간에 평가를 완료하는 한국의 여건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이현 우리교육연구소 대표는 “어떤 대학은 지원자 1만4000명의 서류를 입학사정관 72명이 30일 안에 검토한다. 대부분 대학의 사정이 비슷할 것”이라며 “한 학생을 들여다볼 시간이 30분 남짓인데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 제도를 계속 유지하려면 평가 절차와 기준 등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부모의 재력이나 정보력이 입시 결과를 좌우하지 않도록 다양한 조치를 취했다. 학생부에 기재하면 안 되는 ‘제한목록’을 교외 수상 경력(2010년), 공인어학성적(2011년), 논문 및 도서 출간(2014년),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암시 내용(2016년) 등으로 점차 늘려온 것이다. 하지만 사교육도 이에 못지않게 진화를 거듭했다. 경력 15년 차의 한 입시 컨설턴트는 “매년 사교육의 손을 탄 아이들이 합격하는 게 그 증거”라고 말했다.
‘잠재력 있는 학생을 발굴한다’ ‘오지선다형 주입식 시험의 시대는 끝났다’…. 학종의 가치를 알리는 설명은 아름답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는 방식은 논란을 피할 수 없다. 일각에선 공부와 입시 성적 등에 집착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그릇된 교육문화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많은 학생이 공부라는 ‘사다리’를 통해 타고난 환경에 속박되지 않고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박대권 교수는 “정성평가를 통한 학생 선발이 교육적으로 옳다 해도 공정하게 하기 어렵다면 정책적으로 옳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정시와 수시 모집 비중을 각각 50%로 바꾸고, 특히 학종은 20%로 축소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학입시의 ‘공정성’에 국민들이 공감하는 가운데 ‘인재 발굴’이라는 본래 목표에 충실할 수 있도록 정시와 수시, 학종의 적정 비율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김수연 정책사회부 기자 s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