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간 변호사 ‘알파로’ 대결, 본보 기자가 직접 참가해보니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제1회 알파로 경진대회’에서 인공지능(AI) 변호사와 인간 변호사들이 법률 자문 대결을 벌이고 있다. 12개 팀 중 AI와 짝을 이룬 3개 팀이 1∼3등을 모두 차지해 변호사들로만 구성된 9개 팀을 꺾었다.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2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변호사회관. 경기 결과가 발표되자 장내가 술렁이며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자격증만 없을 뿐 재야의 고수였을까. 아니다. 법률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아 변호사를 이긴 것이다.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과 한국인공지능법학회 주최로 아시아 최초로 AI와 변호사가 대결한 ‘제1회 알파로(Alpha Law) 경진대회’였다.
대회에는 12개 팀이 참가했다. AI와 변호사가 짝을 이룬 2개 팀, AI와 일반인이 힘을 합친 한 팀 등 3개 팀이 AI의 조력을 받았다. 나머지 9개 팀은 변호사 2명씩 팀을 이뤘다. 본보 신아형 기자가 유일하게 일반인으로 참가해 변호사들과 대결을 펼쳤다. 결과적으로 AI 팀이 1∼3위를 휩쓸며 압승을 거뒀다. 신 기자는 AI와 변호사가 연합한 2개 팀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기자의 점수는 150점 만점에 107점으로, 1위(120점)와는 13점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4위를 차지한 변호사팀(61점)과는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다.
심사위원장이 법봉을 두드리면서 경기가 시작됐다. 기자는 AI 변호사가 설치된 노트북에 근로자의 생년월일과 성별, 계약형태를 써 넣었다. 이어 근로계약서 파일을 첨부해 넣자 노트북에서 “삐리삐리” 소리가 났다. AI는 단 6초 만에 검토 결과를 보여줬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기자는 지금껏 법전(法典) 한 번 펼쳐본 적이 없지만 AI가 내놓은 답안을 옮겨 적는 건 간단한 일이었다.
속도만 빠른 게 아니었다. AI는 계약서의 문제점을 귀신같이 잡아냈다. 계약서상 미성년자인 A 씨의 근로시간은 오후 3시부터 11시까지로 적혀 있었다. AI는 미성년자가 야간에 근로하지 못하도록 한 법령을 제시하며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용자는 18세 미만자를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의 시간에 근로시키지 못한다”는 설명까지 내놨다.
반면 변호사팀들은 문제당 20분씩 주어진 촉박한 시간에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구글, 네이버 검색과 스마트폰을 동원해 검색을 하고 빨간펜으로 답안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AI 변호사의 장점인 속도와 정확성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대회 심사위원장을 맡은 이명숙 변호사는 “이번 대회는 변호사와 AI의 대결이 아니라 협업 가능성을 살펴보기 위해 마련됐다”며 “법률 AI가 발달하면 변호사와 판사가 AI의 도움을 받아 변론과 판결을 하는 시대가 곧 도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AI 기술을 법률 시장에 활용하는 것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은 이른바 ‘리걸테크(Legal Tech)’ 관련 기업들이 100여 곳 성업하며 AI 변호사 시대를 준비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초기 단계다.
신아형 abro@donga.com·이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