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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의 새로운 재능기부, 상담자격증 따 가정폭력 피해자 만나

입력 | 2019-08-31 03:00:00

“누군가에 도움이 된다는 것만으로 감사하죠”




28일 오후 서울 강북구에 있는 가족 간 범죄 통합예방지원센터에서 상담사들이 가정폭력 피해자들과 전화 상담을 하고 있다. 상담사 박숙희 씨(오른쪽)는 센터가 처음 문을 연 2016년부터 지금까지 매주 한 두차례 센터를 찾아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새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28일 오전 11시경. 한 70대 여성이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으로 책상 위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저 박숙희 상담사예요. 잘 지내세요?” 전화기 너머 남성은 알코올의존증을 앓는 부인의 상습 폭행에 시달리는 ‘매 맞는 남편’이었다. 수화기를 목과 어깨 사이에 끼우고 양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는 이 여성은 7년 경력의 베테랑 상담사 박숙희 씨(70)다. 박 씨는 서울 강북경찰서가 강북구 번동에 따로 두고 있는 ‘가족 간 범죄 통합예방지원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박 씨가 이 남성을 처음 만난 건 지난달 말이었다. 당시 남성은 무더운 날씨에도 긴팔 티셔츠를 입고 모자를 쓰고 있었다. 아내에게 맞아 팔과 이마에 든 피멍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28일 남성은 “다섯 번의 상담 후 부인의 폭행 횟수는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술을 많이 마셔 힘들다”고 호소했다. 박 씨의 책상 한쪽엔 ‘가정폭력 사건 처리 결과’라고 적힌 보고서가 잔뜩 쌓여 있었다.

가족 간 범죄 통합예방지원센터가 생긴 건 2016년 5월이다. 강북경찰서는 이전부터 가정폭력 사건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관내 인구 대비 가정폭력 신고 건수가 서울의 31개 경찰서 중 가장 많았지만 이를 줄일 묘책이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가정폭력 피해자는 처음 보는 경찰관 앞에서 마음을 쉽게 열지 않았다. 경찰서로 달려왔던 피해자들은 조사 중 마음을 바꿔 ‘신고는 없던 일로 하자’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이들은 대개 더 심한 폭행을 당하고서 다시 경찰서를 찾았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상처를 어떻게 어루만질지 몰랐던 경찰은 2016년 초 ‘아예 전문 상담사들과 손을 잡아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한 지붕 아래서 살아온 이들이 피해자와 가해자가 되는 가정폭력의 특성상 처벌이나 격리만으론 해결이 어려우니 가정 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자는 취지였다. 그렇게 센터가 설립된다는 소식을 듣고 자원봉사 상담사 40여 명이 팔을 걷어붙였다. 대부분 박 씨처럼 느지막이 공부를 시작해 제2의 인생을 사는 50, 60대 상담사들이었다.

○ 평일엔 구급대원, 주말엔 상담사

박 씨는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7년 전부터 상담사로 변신했다. 지금은 손꼽히는 베테랑이지만 본인도 가정폭력 피해의 아픔이 있다. 신혼이었던 30세 때부터 30년 넘게 남편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렸다. 하지만 양가 부모와 친척들은 박 씨에게 참으라고만 했다. 박 씨는 폭행의 탓을 자신에게 돌리며 자괴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혈액암까지 앓았다. 지금은 완치됐다.

박 씨를 지켜보던 딸이 9년 전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평소 주변을 살뜰히 챙기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엄마가 사회복지 분야에 잘 어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박 씨는 62세의 나이에 서울의 한 사립대 평생교육원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상담 관련 자격증 3개를 땄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상담사 교육도 받았다. 지금은 센터 상담자 중 최고령으로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장민수 씨(51)는 서울 은평소방서 소속 119구급대원이다. 고된 근무를 마치고 금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센터를 찾아 상담사로 변신한다. 5년 전 여름 구급 현장에서 겪은 일이 ‘이중생활’의 계기가 됐다. 당시 장 씨는 “학교에 다녀왔는데 엄마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초등학생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아이의 엄마는 이미 심장이 멎어 있었다. 현장을 떠나는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도 무거웠다. 장 씨가 아이에게 “아빠는 어디 계시니?”라고 묻자 아이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빠는 교도소에 있어요….” 이날 장 씨는 형편이 어렵고 기댈 곳 없는 아이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2년 후 가을 한성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해 상담 공부를 시작했다.

장 씨는 야간 근무를 하는 날엔 가족 간 범죄 통합예방지원센터에서 상담 봉사활동을 한 뒤 소방서로 출근한다. 경기 파주시의 자택에서 서울 강북구 센터로, 다시 은평구의 소방서로 이동하다 보면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장 씨는 상담 활동을 멈출 생각이 없다고 한다. 장 씨는 “(가정폭력) 피해자에겐 자기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힘이 된다”며 “피해자가 설사 나쁜 마음을 먹더라도 상담사를 떠올리면 다시 일어나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담사들은 보수를 단 한 푼도 받지 않는다. 그런데도 ‘오히려 얻어가는 게 더 많다’고 입을 모은다.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2년째 센터에서 봉사하는 유해숙 씨(58·여)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면서 지적장애가 있는 자녀 2명을 키우는 한 50대 여성과 상담하던 중 “살면서 이런 위로를 처음 들어본다”는 감사 인사를 받았다. 유 씨는 “다른 일을 할 때도 그 여성의 얼굴이 아른거린다”며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내가 더 감사하다”고 말했다.

○ “선생님 덕분에 제 인생이 달라졌어요”

28일 오전 서울 강북경찰서 소속 학대예방경찰관(APO) 2명이 가정폭력 피해 가정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경찰은 두유와 라면 등 먹을거리와 각종 생필품을 들고 가정을 찾았다. 이 가정은 지난해 말부터 상담사와 경찰의 도움으로 가정불화와 생활고를 조금씩 극복하고 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50, 60대 상담사들의 활약은 가정폭력 피해자의 일상에도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25년간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 온 40대 여성 A 씨가 그랬다. A 씨는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며 흉기와 주먹을 휘두르는 남편의 올가미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A 씨는 세 자녀를 데리고 집을 나와도 생활고와 빚 때문에 남편에게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보복이 두려워 이혼을 요구하지도 못했다.

가족 간 범죄 통합예방지원센터의 상담사는 A 씨와 세 자녀를 2년 동안 총 32차례나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는 건 피해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상담을 받는 자녀들은 아버지에게 맞았던 기억이 동영상처럼 재생된다고 했다. 상담사는 포기하지 않았고, A 씨는 결국 용기를 내 남편과 이혼할 수 있었다. A 씨는 상담사를 찾아 “선생님 덕분에 제 인생이 변했다”며 고마워했다고 한다.

이모 씨(51) 부부도 상담을 통해 사이를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심한 의부증을 앓던 이 씨의 부인은 상담을 받기 전 하루에도 10통씩 남편에게 영상전화를 걸어 누구와 함께 있는지를 확인했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흥분하면 칼과 가위를 들었고 결혼사진도 찢었다. 정신병원도 찾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올 3월 “부부가 서로 바라는 게 뭔지 적고 일주일에 딱 하나씩만 지키자”고 상담사와 약속한 뒤 이를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이 씨 부인의 의부증 증세가 나아지기 시작했다. 강북경찰서 오미애 여성청소년과장은 “가정폭력 피해자가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고 느낄 수 있게끔 상담사들이 애쓰고 있다”며 “눈길을 한 번씩 더 주면 느릴지언정 반드시 변화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강북경찰서 사례를 모델로 삼아 지난해 9월 서울시와 협약을 맺고 서울 서대문경찰서 등 10개 경찰서에 ‘위기가정 통합지원센터’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서울시와 자치구 소속 상담사가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다. 내년엔 25개 경찰서로 확대할 예정이다.

28일 오후 중년의 남성이 가족 간 범죄 통합예방지원센터를 찾아왔다. 상담을 받으러 온 가정폭력 가해자였다. 초조하고 불안한 표정이었다. 이 남성과 2시간 가까이 얘기를 나눈 상담사(55·여)는 그를 배웅한 뒤 이렇게 말했다. “여기 오는 사람 대부분은 저분처럼 상처가 곪다 못해 터진 상태입니다. 저는 늘 제 자신이 ‘빈 쓰레기통’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선입견도 없이 얘기를 들을 준비를 하고 있어요.”

김소영 기자 k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