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국 ‘반대’ 평가, 빅데이터 분석에서도 ‘찬성’의 3배 이상으로 나타나 ● ‘조국 힘내세요’ 실검 경쟁은 다수 의견과 거리 멀어 ● 목소리만 큰 특정 세력의 메시지에 포로가 되면 민주적 여론 수렴 실패
민주주의가 무엇일까. 사전에서는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해 국민을 위해 정치를 행하는 제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이 민주주의를 쟁취하고자 오랜 시간 투쟁해왔고 마침내 국제 사회에서 존경받는 민주주의 국가로 대접받고 있다. 여기서 국민은 일부 집단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민 전체를 포괄한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전체주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이념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민주주의의 의미가 왜곡되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관련된 논란이다.
조 후보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했다. 국회 인사청문회라는 민주화된 절차를 거쳐 부적격 사유가 없어야 장관으로 임명된다. 이 과정에서 아무런 흠결도 없는지 여론과 언론의 검증을 받는 일은 매우 자연스럽고 필요하다. 조 후보자는 언론 검증 과정에서 자신의 가족과 관련된 수많은 의혹이 드러났다. 언론을 통해 드러난 의혹은 국민의 눈을 거쳐 재차 검증받는다. 그리고 후보자에 대한 여론이 형성된다. 언론과 여론 검증을 통해 본 조 후보자는 법무부 장관으로 부적절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중앙일보’가 중앙일보 조사팀에 의뢰해 8월 23~24일 실시한 여론조사(전국 1000명, 유무선 RDD 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응답률 15.2%)에서 ‘조국 후보자의 법무장관 임명을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를 물었다. ‘임명 찬성’은 27.2%, ‘임명 반대’는 60.2%로 나타났다. 문 대통령이 임명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특히 20대는 응답자 10명 중 7명 가까이가 ‘임명 반대’라고 답했다.
● 포털 실검 1위 경쟁, 일방적 여론 형성하는 괴물
여론조사는 여론을 수렴하는 과학적 방법이다. 대표성과 객관성이 기준이다. 특정 세대 또는 특정 계층의 여론만 대변하지는 않는다. 혹시라도 여론조사의 정확성이 위협받는다면 보완적으로 빅데이터를 확인하면 된다. 빅데이터 분석도구인 소셜메트릭스 인사이트에 ‘조국’을 검색어로 입력해봤다. 대통령이 그를 지명한 초기인 8월 14일쯤까지는 조 후보자에 대한 검색량이 많지 않다. 연관어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차이가 거의 없다(그래프 참조). 그렇지만 딸과 관련된 의혹이 집중 제기된 8월 18일 이후 부정 연관어가 급속도로 늘어나 긍정보다 3배 이상 많을 정도다. 조 후보자가 적극적으로 해명했지만 그 기간 부정 평가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가장 일반적인 여론조사 결과와 빅데이터 분석 모두 조 후보자에 대한 부정 평가가 압도적이다. 설령 자신과 생각이 다르더라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할 여론이고 민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 후보자에 관한 맹목적 추종과 일방적 여론 형성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조 후보자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과 의혹 제기에도 그를 반대하는 뉴스 기사나 공식 발언은 인터넷상에서 뭇매를 맞고 있다. 심지어 정의당 심상정 대표의 조 후보 비판 발언에 대한 댓글은 심 대표를 향한 인신공격으로 가득 차 있다. 여론 전쟁을 넘어 청원 전쟁, 실시간 검색어(실검) 전쟁으로까지 불이 옮겨 붙고 있다. 조 후보자 지지자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반드시 해주십시오’라는 글을 올렸다. 8월 29일 오전 8시 기준으로 이미 50만 명을 돌파했다. 청원 내용은 조 후보자가 사법개혁의 적임자고, 문 대통령과 개혁 철학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임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국 후보자의 임명을 반대합니다’라는 청원도 3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같은 시각 기준).
8월 27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검색어 순위. [네이버 화면 캡처]
국민청원은 여론의 대표성과 거리가 멀다. 특정 이슈와 관련된 이들의 참여가 확대, 재생산된 결과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자유한국당 해산과 더불어민주당 해산 청원까지 올라간 바 있다. 아무리 정당이 제구실을 못한다 해도 청와대가 정당 해산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 원리대로 선거를 통해 심판받아야 마땅하다. 마찬가지로 인사청문회를 거쳐 적합 또는 부적합 여부를 판단받아야 하는 장관 후보자가 국민청원의 영향을 받는다면 민주주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여론 왜곡 현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조 후보자에 대한 검찰의 전격적인 압수수색이 있은 후 국민청원 전쟁은 온라인 ‘실검 대전’으로 바뀌었다. 조 후보자 지지층은 특정 시각에 동시 다발적으로 ‘조국 힘내세요’라는 검색어 입력을 통해 실검 1위를 만들어냈다. 그러자 조 후보자의 장관 임명을 반대하는 누리꾼들은 ‘조국 사퇴하세요’라는 검색어를 동시 다발적으로 입력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20대와 50대는 ‘조국 사퇴하세요’가 실검에서 더 높은 순위, 30대와 40대는 ‘조국 힘내세요’ 또는 ‘가짜뉴스아웃’이 더 높은 순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특정 집단의 적극적인 의사 표명 결과로, 결코 다수의 의견을 대변하지 않는다.
● 여론 끓어도 文 대통령 침묵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의견 표출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그렇지만 대표성과 객관성을 갖춘 여론을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의 기본은 흔들리고 만다. 국민청원에 집단적인 정치 의견을 드러내거나 약속된 시간에 집단적인 검색어 입력을 통해 특정인을 실검 1위로 만든 것은 그저 참고할 여러 가지 여론 가운데 하나라고 봐야 한다. 국민 다수의 여론에 눈감고 목소리가 큰 특정 세력의 메시지에 포로가 된다면 민주적 통치 행위를 기대하기 어렵다. 재판 결과에 불복하는 수많은 국민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을 도배하고 있지만 청와대가 개입하지는 못한다.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드루킹이 저지른 매크로라는 흉물로 인해 이제 포털사이트 실검 1위는 좀처럼 신뢰하기 어려운 괴물이 돼버렸다. 다수 의견이 아니라 특정 세력의 여론에 흔들리는 민주주의를 염려하는 이유는 사실 다른 데 있다. 국민 다수가 조 후보자의 자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아우성이다. 이쯤 되면 임면권자인 대통령의 의사 표명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다. 국민 다수의 들끓는 여론에도 침묵하는 대통령을 보면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생각하게 된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insightkceo@gmail.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04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