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을 찾아서]<3> 주103시간 일하는 ‘투잡’ 김민수씨
○ 투잡족의 명암
1년 전 김 씨는 대기업 협력업체를 다니며 업소용 냉장고를 수리했다. 매일 할당된 물량을 채워야 퇴근할 수 있었다. 초과근무가 잦을 수밖에 없었다. 가끔 주말에도 일해야 했다. 그러나 회사는 초과근로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고된 일과에도 불구하고 수입은 제자리였다. 고민 끝에 같은 업종의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월급은 비슷하지만 ‘칼퇴근’이 가능한 곳이다. 이직을 선택한 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아니라 ‘투잡’을 위해서다.
“사실 개인시간이 필요해 이직한 건 아니에요. 돈을 더 벌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으니 차라리 퇴근시간을 지켜주는 곳으로 옮겨 투잡을 시작했죠.”
“한 달 수입이 500만∼600만 원 정도인데 투잡을 안 하면 이렇게까지 벌지 못했을 거예요.”
부업을 시작하면서 수입은 늘었지만 잃은 것도 있다. 건강과 사람이다. 몇 달 전부터 림프샘 부근과 뒷목에 혹 같은 게 잡히지만 그는 아직 진료를 받지 않았다. 시간이 아까워서다. 장시간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탓에 무릎도 시리다.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오토바이를 운전하면 사고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자주 연락하던 친구들과도 소원해졌다.
“인간관계는 다 끊었습니다. 옛날에는 친구들이랑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났는데 얼굴 못 본 지 오래됐어요. 가족과도 연락이 뜸해졌죠. 회사생활 말고는 사회생활이랄 게 없습니다.”
○ 플랫폼 종사자의 절반은 투잡
이날 김 씨가 선택한 첫 번째 ‘콜’은 500m 떨어져 있는 횟집이었다. 배달료 2800원 중 2500원이 김 씨에게 떨어진다. 거리에 따라 배달료는 6000원까지 오른다. 이렇게 김 씨는 평일 하루 평균 25건의 ‘콜’을 받는다.
김 씨처럼 4차 산업혁명 생태계에서 특수고용직(근로자와 개인사업자의 중간 형태)으로 일하는 사람을 ‘플랫폼경제 종사자’라고 부른다. 한국고용정보원은 김 씨와 같은 플랫폼경제 종사자 규모를 최대 53만8000명(2018년 기준 국내 취업자의 2.0%)으로 추산한다. 이 가운데 46.3%가 김 씨와 같은 ‘투잡족’이다. 고용정보원이 플랫폼경제 종사자 42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3.5%는 주당 53시간 이상 일한다고 답했다. 플랫폼경제 종사자 2명 중 1명이 투잡족인 것을 감안하면 본업을 포함한 근로시간은 김 씨처럼 훨씬 많다는 얘기다.
장시간 근로에 노출돼 있지만 이들은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법적으로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인 탓이다. 김 씨는 그럼에도 스스로를 ‘직원’이라고 칭한다.
“비가 와서 배달이 많은 날은 아파도 쉬지 못해요. 눈치가 보이거든요. 아무리 개인사업자처럼 일한다고는 하지만 지켜야 할 선은 있는 거죠.”
오후 10시경 배달이 뜸해지자 그는 오토바이를 주차하고 편의점에서 김밥을 사왔다. 늦은 저녁을 먹는 중에도 그는 스마트폰을 계속 쳐다보며 새로운 콜이 오는지 확인했다. 자정을 넘겨 오전 2시가 되자 김 씨는 두 번째 퇴근길에 올랐다.
오전 8시 김 씨는 출근길에 나섰다. 다시 긴 하루가 시작됐다.
송혜미 기자 1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