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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지나기 꺼리던 길이…범죄 취약 동네의 재탄생

입력 | 2019-09-02 18:35:00


과거 대표적인 달동네로 불렸던 서울 성동구 금호동. 재개발로 고층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섰지만 금호4동은 재개발이 더딘 탓에 여전히 낡은 저층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주민들은 밤에는 물론이고 낮에도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2일 찾은 금호4동은 달라져 있었다. 비슷해 보이는 건물에는 도로명 주소가 큼직한 글씨로 쓰여 있어 구불구불한 골목에서도 현재 위치가 어딘지 알 수 있었다. 꺾이는 골목마다 ‘안심유도반사판’이 설치돼 혹시 뒤에 따라오는 사람이 있는지 쉽게 살필 수 있다. 가파른 오르막길에 설치된 ‘안심비춤이’ 센서는 사람이 지날 때마다 바닥을 비추는 불이 켜졌다. 이전에 주민들이 이 길을 오르려면 스마트폰 불빛에 의존해야 했다.



이런 시설물들은 서울시와 성동구가 함께 추진한 생활안심디자인에 따라 생겨난 것이다. 생활안심디자인은 골목길을 정비하고 비상벨, 폐쇄회로(CC)TV 등 안전시설을 설치해 범죄를 예방하는 도시 디자인이다. 이전엔 범죄예방디자인(CPTED)이라고 불렸다. 서울시는 금호4동 같은 생활안심디자인을 2012년부터 60곳에 조성했다. 다만 범죄예방디자인이라는 명칭 자체가 해당 지역을 우범지역처럼 보이게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고려해 생활안심디자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주요 연구기관의 조사 결과 생활안심디자인은 주민들의 마을에 대한 만족도와 자긍심, 관심을 크게 높였고 실제 범죄예방 효과까지 나타났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6년 생활안심디자인을 적용한 5곳의 사업효과성을 분석한 결과 4곳에서 주민들의 범죄피해 두려움과 폐가, 쓰레기 방치 등 물리적 무질서가 크게 줄었다. 주민들의 동네에 대한 애착도 크게 높아졌다.

송파구 마천2동에는 야산과 가깝고 낙후돼 해가 지고 난 뒤 주민들이 지나가길 꺼리는 길이 있었다. 서울시와 송파구는 이곳에 ‘마천아름길’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마을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추진했다. 휴게공간을 만들고 바닥에 부착돼 푸른빛을 내는 ‘쏠라표지병’과 태양광센서 조명도 설치했다. 사업을 추진하기 전에는 워크숍을 열어 주민들의 의견을 디자인에 적극 반영했다. 설문조사 결과 이런 시설을 설치한 뒤 주민들의 범죄피해 관련 두려움은 27.4% 감소했고 동네에 대한 애착은 25.0% 높아졌다.


구로구 가리봉동의 일부 지역은 쓰레기 무단 투기 등이 자주 발생했다. 무분별한 쓰레기 투기로 악취가 심했고 동네가 슬럼처럼 보일 정도였다. 일부 중국동포들은 쓰레기 처리 방법 등을 잘 모르고 있었다. 서울시와 구로구는 이들에게 쓰레기 처리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생활안심디자인을 적용했다. 집집마다 쓰레기통을 설치했고 골목길에 ‘쏠라표지병’과 주민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적은 ‘에티켓 사인’을 설치했다. 그 결과 물리적 무질서가 17.0% 줄고 동네에 대한 주민들의 애착은 15.4% 증가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성훈 박사는 “주민들이 해당 지역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했다. 그 결과 송파구 마천2동과 성동구 용답동은 실제로 112신고 등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면서도 “다만 서초구 반포1동은 1인 가구와 유동인구가 많아 주민 네트워크가 형성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생활안심디자인이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생활안심디자인의 핵심은 유지 관리다. 지속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관련 시설물이 오히려 도시 흉물로 바뀔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