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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주축인 10~20대 ‘앵그리영맨’들, 홍콩의 미래에 불안감 느껴

입력 | 2019-09-02 20:26:00


2일은 홍콩 중·고교 개학 첫날이었다. 하지만 중등학교 5학년(한국의 고교 2학년에 해당)인 궉 양(16)은 학교에 가는 대신 학교 친구들 20여 명과 함께 홍콩섬 북부 에든버러 광장으로 향했다. 태풍의 영향으로 폭우가 쏟아지는데도 궉 양처럼 교복 입은 중·고교생들 800여 명이 오전부터 광장에 몰려들었다. 이날 정부에 반대하는 200여 중·고교의 학생 약 1만 명이 수업거부(동맹휴학)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10여 곳의 대학생들도 2주간 수업거부를 시작했다.

‘미래가 없는데 수업이 무슨 필요인가’라는 구호의 단상이 설치된 광장에서 만난 앳된 모습의 궉 양은 파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친구들과 재잘대며 까르르 웃던 그는 ‘왜 수업거부에 동참했느냐’는 질문에 일순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경찰이 시민을 보호하지 않는데 정부는 그런 경찰만 보호하잖아요. 어른들은 무작정 정부를 지지하고요. 나보다 더 어린 친구들도 거리에 나오니 힘을 보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0대 고교생인 그는 정부와 경찰, 기성세대를 모두 불신하고 있었다. 홍콩 시위는 10~20대 ‘앵그리영맨’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지난 주말 공항·지하철 등 도심기능 마비와 사보타주를 시작한 뒤 수업거부로 반(反)정부 운동을 확대하고 있다.

홍콩의 앵그리영맨들은 왜 정부권력을 불신하고 이를 과격한 방식으로 표출하는 걸까. 수업거부에 나선 대학생 3만여 명은 홍콩중문(中文)대에서 집회를 열었다. 홍콩중문대 4학년 찬 씨(여·21)는 “화염병을 던지거나 도시를 파괴하는 극단적 행동을 할 생각이 없다”며 “하지만 평화적인 시위의 목소리에 정부는 전혀 응답하지 않고 있다. 경찰이 지하철 객차 안까지 들어가 시민과 시위대를 가리지 않고 구타했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거리로 나오게 만든 근본적인 요소가 중국화되는 홍콩의 미래에 대한 공포라고 했다. 찬 씨 일행은 기자가 베이징(北京) 특파원이라고 소개하자 “한국 기자라 해도 중국 정부의 통제를 받는 것 아니냐”며 머뭇거렸다. 겨우 인터뷰를 시작한 뒤 ‘중국에 적대감이 있는 것이냐’고 물으니 “중국 정부가 국민을 대하는 방식을 싫어한다. 홍콩 정부를 불신하는 것처럼 중국 정부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일국양제(一國兩制)가 사라지고 있다고 느껴 많은 홍콩 젊은이들이 홍콩의 미래를 불안해하고 있다. 이게 바로 학교에서 공부해야 할 우리가 여름을 희생한 이유”라고 말했다. 대학생들은 캐리 람 정부가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데드라인을 13일 오후 8시로 제시했다.

이날 의료, 금융 등 분야 노동자들도 3일까지 이틀간 파업을 선언하고 집회를 열었다. 시위대는 이번 행동을 수업거부(파과·罷課), 파업(파공·罷工), 상점 철시(파시·罷市)의 ‘3파’로 표현하고 있다. 시위대는 매주 금요일과 일요일에 생필품 외에는 사지 않는 파매(罷買) 운동도 호소하고 있다.

중국은 1일 처음으로 시위대가 “색깔혁명(정권교체 운동)을 중국 본토 내에 침투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중국이 직접 개입에 나설 명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신화통신은 “중국을 적대시하는 이들에게 끝이 다가오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2일 홍콩 밍보 등 주요 신문 1면 전면에 홍콩청원사단총회(淸遠社團總會)라는 단체 명의로 “사회 질서를 회복하자”며 계엄령인 ‘긴급법’의 빠른 시행을 정부에 요구하는 광고가 실었다. 홍콩 정부는 지난 주말 집회가 “테러 성향”을 보였다고 이날 밝혀 강경 무력진압 가능성을 높이기도 했다.

홍콩=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