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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 과격화 우려[횡설수설/송평인]

입력 | 2019-09-03 03:00:00


중국 덩샤오핑 체제에서 개혁파의 기수였던 후야오방 총서기의 사망을 추도하기 위해 학생과 시민이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모이기 시작한 것은 1989년 4월 17일이다. 계엄령이 내려진 것은 33일이 지나서다. 그 후에도 예상외로 강한 시위대의 저항에 약 5만 명의 군인은 베이징 근교에 대기만 하고 있었다. 실제 진압에 나선 것은 계엄령 선포로부터 13일이 지나서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코앞에서 벌어진 시위를 무력 진압하는 데 나서기까지 47일이 걸렸다.

▷홍콩에서 송환법에 반대하는 시위가 어제로 86일째를 맞았다. 홍콩 인근 선전에 중국 공안이 집결해 있어 무력 개입의 가능성이 언급되지만 아직 홍콩에 계엄령이 내려지지는 않았다. 시위대는 어제부터 총파업과 동맹휴학에 돌입하며 주말 중심의 시위를 일상의 저항으로 바꾸는 새 단계에 들어섰다. 홍콩도 13일이 추석이다. 시위대는 13일까지 송환법의 완전 철폐와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했다. 13일까지가 또 다른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홍콩 시위에는 두 흐름이 합류하고 있다. 일국양제(一國兩制)에서 민주주의의 확립을 요구하는 다수의 흐름과 독립 없이는 홍콩의 민주주의도 불가능하다는 소수의 흐름이다. 지난주 홍콩 경찰에 체포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시위 주도자 조슈아 웡 같은 이는 온건파다. 그가 이끄는 데모시스트당은 홍콩의 독립을 주장하는 대신 일국양제가 끝나는 2047년 투표로 홍콩의 미래를 결정하자는 입장이다.

▷시위에는 늘 다수의 의도를 벗어나는 과격한 흐름의 분출이 있게 마련이다. 지난 주말 중국 오성홍기를 끌어내려 불태우는 행위가 있었으나 실제 압박도 되지 못하면서 중국 본토인의 분노만 자아냈다. 친중(親中) 홍콩 정부가 프락치를 이용해 시위의 과격화를 유도한다는 의혹도 없지 않다. 허리에 권총을 찬 남성이 화염병을 던지는 모습이 사진에 찍혔다. 그의 정체를 두고 시위대로 위장한 경찰인지 논란이 벌어졌다.

▷6·4 톈안먼 사태 당시 후야오방을 이은 자오쯔양 총서기는 5월 20일 리펑 등 보수파가 주도한 계엄령 발효를 앞두고 “여러분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제발 광장을 떠나주세요”라고 시위대에 눈물로 호소했다. 5월 24일에서 27일 사이 자오쯔양이 해임됐다. 5월 말 학생 지도부의 온건파 왕단과 우얼카이시가 톈안먼 광장에서 학생들을 철수시키자는 의견을 냈으나 차이링 같은 강경파가 반대했다. 6월 3일 밤 잔혹한 진압이 시작됐다. 홍콩에서 같은 불행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