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작가로 돌아온 연상호 감독
연상호 감독이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최규석 작가가 그림을 그린 네이버 웹툰 ‘지옥’은 사회에 갑자기 등장한 저승사자라는 초자연적 현상을 다룬다. 연 감독은 검은 형체의 저승사자 등 일부 설정을 연작 애니메이션 영화 ‘지옥―두 개의 삶’에서 가져왔다. 최규석 작가 제공
불현듯 찾아온 천사의 말에 한 남성은 좌절한다. 운명을 받아들일 것인가, 저승사자로부터 도망칠 것인가. 연상호 감독(41)의 연작 애니메이션 영화 ‘지옥―두 개의 삶’(2003, 2006년)은 언제나 나쁜 선택을 하고 마는 인간에 대한 잔혹한 우화다.
영화 ‘부산행’(2016년)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그가 이번엔 웹툰에 도전한다. 애니메이션에 바탕을 둔 네이버 웹툰 ‘지옥’의 연재를 지난달 25일부터 시작했다. ‘지옥’은 저승사자가 출몰하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사회가 혼란에 빠지는 과정을 다룬 영화의 프리퀄(앞선 이야기를 다룬 속편)에 해당한다.
무엇인가로부터 도망치는 악몽을 꿨던 그는 대학 시절인 1996년 원작의 시나리오를 썼다. 총 35분가량의 짧은 두 단편 영화는 특유의 어둡고 기괴한 서사와 장면들로 가득하다. 다소 거친 편집과 어설픈 움직임에도 ‘지옥…’은 많은 팬들에게 ‘연상호’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이었다.
연 감독은 웹툰 시나리오를 새로 쓰면서 힘들었던 20대 기억을 떠올렸다고 한다. 1인 작업인 데다 제작비도 부족해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두 단편을 만드는 데 3년이 넘게 걸렸다. 실제 배우의 연기에 애니메이션을 합성하는 ‘로토스코핑’ 기법을 쓰면서 직접 연기부터 그림까지 홀로 모든 작업을 담당했다. 녹록지 않은 제작 여건에 옴니버스 형식으로 염두에 뒀던 시리즈 제작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번 웹툰의 그림은 최규석 작가(42)가 맡았다. ‘송곳’으로 이름을 알린 최 작가는 ‘돼지의 왕’(2011년), ‘사이비’(2013년), ‘서울역’(2016년) 등 연 감독 작품의 원화 작업 대부분을 그려 왔다. 친구 사이인 둘은 2년 전쯤 맥주를 마시다 웹툰을 기획했다고 한다. 연 감독은 “친한 친구끼리 작업하면 마냥 재미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6개월간 회의를 하는 동안 은근히 의견 충돌이 많았다”며 웃었다.
연상호 감독은 “욕심이겠지만 ‘스타워즈’나 ‘건담’같이 모든 세대에게 사랑받는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돼지의 왕’(2012년)으로 감독주간, ‘부산행’(2016년)으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 초청되며 두 번이나 칸 국제영화제의 부름을 받은 연 감독. 하지만 그는 여전히 “제가 뭘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예상치 못한,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때가 많았다. 첫 실사영화이자 국내 최초 좀비 블록버스터 ‘부산행’으로 ‘1000만 감독’ 반열에 올랐지만, 연 감독은 흥행이 보장된 속편 대신 ‘염력’(2018년) 연출을 택했다.
물론 ‘염력’은 흥행에 실패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새로운 우물을 판다. 지난해엔 직접 그린 그래픽노블 ‘얼굴’을 출간했다. 그는 “규석이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시나리오가 있으면 웹툰도 직접 그려보고 싶다”며 웃었다.
“‘염력’은 ‘부산행’이나 이전 애니메이션과도 비슷한 지점이 없었죠. 그래서 관객들이 느낀 배신감이 컸던 것 같아요. 그래도 한국에서 주류 장르가 아닌 ‘B급 코미디’를 해봤다는 것에 개인적으론 만족합니다.”
작업실에 틀어박혀 저예산 영화를 만드는 데 익숙했던 그도 ‘부산행’ ‘염력’ 등을 연출하며 “협업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연 감독은 “혼자 작업을 많이 해서 그런지 시나리오부터 촬영까지 모든 과정을 통제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남 이야기를 들으면 제 색깔이 없어진다는 막연한 불안감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가 연출 중인 영화 ‘반도’에 대해 물으니 “일주일에 절반을 대전 촬영지에서 보내고 있어 정신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내년 여름 개봉을 앞둔 ‘반도’는 배우 강동원, 이정현이 출연하는 좀비물. ‘부산행’의 속편 격으로 4년 뒤 폐허가 돼버린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총제작비는 190억 원으로 전편보다 규모가 더욱 커졌다.
“‘반도’를 촬영하면서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드는 느낌을 받아요. 컴퓨터그래픽(CG) 작업이 워낙 많아서요. 하하.”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