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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매운동은 한국 소비자의 선택… 위안부는 민족 아닌 인권문제”[논설위원 이슈 칼럼/우경임]

입력 | 2019-09-04 03:00:00

‘Z세대’ 대학생들의 ‘反日’
소니 대신 삼성 쓰며 자란 첫 세대… 日에 경제력 열등감 전혀 없어
日문화-일본인 호감도 높지만 “日정부 불공정한 게임시작” 반감
불매운동에 76%가 적극 참여… “日보다 살기좋은 나라 만드는게 극일”




우경임 논설위원

어쩌면 일본을 한참 아래로 보며 자란 첫 세대일 터다. 밀레니얼 세대보다 늦게,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태어난 Z세대 얘기다.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된 1998년 이후 태어난 Z세대는 한국 문화의 저력을 실감하고 있다. 한일 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는 사이에도 방탄소년단의 일본 투어 공연은 21만 명이 관람했고, 싱글 앨범은 돌풍을 일으켰다. 일본 영화 가요 만화 수입을 앞두고 마치 문화 침략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경계했던 시대에는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다.

경제적으로는 한일이 비등비등한 싸움을 벌이는 것을 보며 자랐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장기 불황을 겪는 동안 우리 경제는 승승장구했다. 한국과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격차는 3배로 좁혀졌고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로 엇비슷한 수준이다. Z세대는 삼성 스마트폰을 쓰고, 모토로라 휴대전화는 알지 못한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며 민족주의 정서가 희박할 것 같은 Z세대가 반일(反日) 감정을 드러내며 불매운동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Z세대 대학생 8명을 인터뷰해 이들이 생각하는 ‘반일’에 대해 들어봤다.

○ Z세대 8명에게 물어보니

Z세대는 일본 여행은 물론이거니와 일본인 친구를 사귀거나 함께 공부한 경험이 있었다. 일본과 직접 접촉하면서 역사 교과서 속 일본과 밖 일본이 다르다고 느꼈다고 한다. 통계적으로도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적대감이 낮게 나타났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일본인에게 호감이 간다’는 응답이 가장 많은 건 Z세대(51%)였다.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응답(29%)의 1.8배나 됐다.

물론 이웃 국가로서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매우 낮았다. 여느 세대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비율만 떼어 보면 Z세대(69%)가 가장 낮았다. 배민석 씨(20·한국외국어대)는 “한일 분쟁이 개인 대 개인 간 갈등은 아니지 않으냐”며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하지만 단절되어 살 수 없는 양국 국민이 서로 적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불매운동은 꾸준히 참여하고 있었다. 같은 조사에서 Z세대 불매운동 참여율은 7월 둘째 주 66%였으나 7월 넷째 주에는 76%로 뛴다.(※한국갤럽은 8월 해당 문항을 조사하지 않았다. 한국리서치 등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참여율이 더 높아졌다.) 인터뷰에 응한 8명 모두 일본 여행을 접거나 일본 제품을 사지 않고 있었다.

이병창 씨(25·연세대)는 “불매운동은 소비자의 선택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외국 여행을 가는 친구가 일본 경유조차 꺼리기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강제징용을 부인하는 일본이 싫어서’라고 하더라”며 “감정적인 반응이든, 이성적인 판단이든 소비자로서 마음이 시켜서 사지 않았다는데 이를 비난할 수 없다”고 했다. 일본 기업이든 한국 기업이든 돈을 쓰면서 마음이 불편해진다면 소비자는 사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 반일감정 SNS상에서 증폭됐지만

2000년대 스마트폰 대중화와 함께 자라난 Z세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연결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 SNS에서 한일 분쟁에 관한 정보나 불매운동 정보를 얻었고 ‘일본 제품 보이콧’ 같은 푯말을 찍어 올리거나 #(해시태그)를 통해 의견을 드러냈다. 김지원 씨(20·이화여대)는 “SNS를 보면 자주 보고, 관심 있는 주제를 걸러서 보여준다. ‘인권’ ‘대학’과 같은 커뮤니티에서 추천해주는 게시물을 통해 주로 정보를 얻게 된다”고 했다.

반일에 관한 정보를 편식하면서 극단적인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건 아닌지 물었다. 이에 대해 김민수 씨(20·연세대)는 “강경론이 SNS상에서 과다 대표되는 경향이 있는 건 맞는 것 같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불매운동에 대한 체감 정도가 다르다”며 “일본 제품을 (한 개도 쓰지않는) 사람을 실제로 마주치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반면 김나연 씨(19·연세대)는 “굳이 일본 제품을 사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방적인 여론 몰이에는 거리를 둔다”며 “‘토착왜구’ 같은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는 프레임도 위험해 보인다. 1920년대 일본이 조선 분열 책략을 썼던 것과 뭐가 다른가”라고 비판했다.

○ “일본, 불공정한 게임 하고 있다”

이들이 불매운동에 나선 배경에는 일본이 먼저 게임의 룰을 깼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최다은 씨(19·부산대)는 “일본은 이번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 징용 판결 때문이다, 전략물자를 반출했기 때문이다 등 오락가락하며 일관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일본의 부당한 조치는 국제무역의 ‘룰’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박재원 씨(20·고려대)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부터 2015년 위안부 합의까지 한일 관계의 불균형이 누적돼서 터진 것 같다”며 “과거 잘못을 부인하는 일본의 태도가 한국인이 인내할 수준을 넘어섰다. 일본이 한국을 동등한 이웃 국가로 대한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반일과 우리 정부의 반일 기조를 지지하는 것은 별개라고 봤다. 배민석 씨는 “합리적인 대안 없이 반일, 혐한 감정을 부추겨서 이익을 보는 사람이 누구인가. 소수 정치인들의 정파적 이익에 이용당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민수 씨도 “일본 정부의 조치는 시정돼야 하지만 우리 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충분히 했는지, 그건 다른 문제”라고 했다.

Z세대는 특히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분노가 컸다. 이들은 1991년 김학순 할머니 증언으로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뒤에 태어났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시민운동을 동력 삼아 국제적인 이슈가 된 만큼 그 활동에 다수가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 위안부 피해자를 만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인권동아리에서 위안부 피해자를 돕는 배지를 팔고, 모의유엔총회 등에서 토론하는 식이다.

김나연 씨는 “위안부 피해자는 민족주의 차원이 아닌 보편적인 인권 측면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류의 역사다. 과거에 매여서도 안 되지만 이를 잊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노승현 씨(20·경희대)는 “배상도 사과도 중요하지만 일본이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라고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 Z세대가 말하는 진정한 반일은

그렇다면 진정한 반일이란 뭔가. 극일이란 가능한가. 김민수 씨는 “삼성이 소니를 넘어선 것처럼 실력으로 이기는 것이 극일이다. 실리적인, 실용적인 접근이 필요한데 과거 조선처럼 명분에만 집착해선 넘어설 수 없다”고 말했다. 노승현 씨도 “작은 나라인 만큼 경제로 강대국이 되어야 한다. 만약 우리 경제력이 압도적이었다면 독도나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에 밀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을 배울 때 일본의 실력에 대해 배운 적은 없는 것 같다. 일정 수준 기술 자립도 필요하고 이참에 일본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극일이 국가적인 목표가 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병창 씨는 “일본보다 경제력이 커지고, 일본이 망했으면 하는 게 우리의 목표이라는 게 이상하다”며 “그런 목표를 위해 희생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일본보다 살기 좋은 나라가 되면 자연스럽게 극일이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Z세대는 이웃 국가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 당당하게 항의했다. 한 달 뒤에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입시비리 의혹에도 촛불을 들었다. 정정당당하게 뛴다. 그러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라고 하면 참지 않는다. 그것이 Z세대를 관통하는 가치관으로 보였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