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국 유지땐 美와 갈등 우려… 트럼프 시한 내달 23일까지 결론
한국 정부가 관세와 보조금 면에서 혜택을 볼 수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내 개발도상국 지위를 철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 7월 경제적 발전도가 높은 국가가 WTO 내 개도국 지위를 이용해 특혜를 누리고 있다면서 지위 철회를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정한 시한인 다음 달 23일까지 개도국 지위 유지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낼 예정이다.
4일 통상당국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와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 부처는 WTO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이 개도국으로 남는다면 자칫 미국 대 중국의 싸움이 미국 대 한국 구도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면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해도 농업부문에서 받는 혜택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과거 WTO 공식회의와 비공식 협의 등에서 각 국가가 현재 누리고 있는 관세 혜택 등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한국은 1994년 WTO에 가입할 당시부터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 덕분에 농업부문에서 관세와 보조금 등 특혜를 받고 있다.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당시 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라는 권고를 주변국으로부터 받았지만 “향후 협상 및 협정에서 농업 외 분야에서는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밝혀 개도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앞서 중국과 인도가 WTO 개도국 지위를 누리면서 급성장하자 미국은 지속적으로 개도국 지위 인정에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요구해왔다. 특히 올 2월에는 △OECD 회원국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세계은행에서 분류한 고소득 국가 △세계 전체 무역의 0.5%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 등 4개 기준을 새로 제시하면서 WTO를 압박했다. 한국은 유일하게 미국이 제시한 4개 기준을 모두 충족해 화살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7월 26일(현지 시간) “90일 이내에 WTO가 중국 등 20여 개국의 개도국 혜택을 철회하지 않으면 미국이 일방적으로라도 개도국 대우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대만과 브라질은 이미 개도국 지위 배제를 선언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 이후 아랍에미리트(UAE)와 싱가포르도 개도국 지위를 내놓았다.
세종=최혜령 herstory@donga.com / 주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