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사랑의 끝’ 문소리-지현준
문소리(왼쪽), 지현준은 “독백으로 연결된 극이라 혼자 연습해도 쉬울 줄 알았는데 막상 상대가 앞에 없을 때는 이상하게 몰입이 잘 안 됐다. 이별하는 순간에도 서로가 너무나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쳐다봐도 내 안에 아무 느낌이 없어.”(지현준)
서로를 향해 내뱉은 말이 미사일처럼 날아가 폭발한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선을 넘은 두 남녀 사이 ‘말의 전쟁’이 2시간 동안 이어진다. 가시 돋친 말로 상대에게 굴욕감을 안기는 이들은 실은 6년 동안 서로를 미칠 듯 사랑한 연인이었다. 배우 문소리(45)와 지현준(39)이 연극 ‘사랑의 끝’에서 이별을 앞둔 연인으로 무대로 돌아왔다. 지난달 29일 서울 성동구 우란문화재단에서 만난 두 배우는 “연습 때마다 공업용 대형 진공청소기가 영혼을 빨아들여 탈탈 털리는 느낌”이라고 했다.
연기력이 탄탄한 두 배우에게도 이 작품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대사의 양만 각자 50여 페이지에 달한다. 대사도 거친 데다 감정의 폭도 크다. 지현준은 “사랑의 끝, 인생의 끝을 표현하면서 배우로서 연기의 끝까지 가게 만든다”고 했다. 문소리는 “가슴에 박히는 말을 하나하나 삼킨 뒤 ‘끝났어?’라는 말과 함께 후반부에서 제 감정을 모조리 터뜨린다”고 했다.
둘은 3년 전 연극 ‘빛의 제국’에서 첫 호흡을 맞추며 신뢰를 쌓았다. 이번에도 “믿고 함께할 수 있는” 동력이 됐다. 문소리는 “굵은 철사 같던 지현준 씨가 이 작품에서 너덜너덜해지는 걸 보는 재미가 있다”며 웃었다. 지현준은 “3년 전 연습실에서 감정이 ‘터져’ 스스로 주체할 수 없던 순간, 문 선배가 건넨 김용택 시인의 시를 읽고 큰 위안을 받았다”고 했다.
독하면서 ‘찌질한’ 이별을 담으려면 한국 감성에 맞게 공감 가는 단어를 선택하는 게 필수. 둘은 번역을 마친 대본을 2주 동안 붙들고 다시 ‘최적화’ 작업에 돌입했다. 지현준은 “프랑스어에서 한 단어로 표현되는 ‘수치, 굴욕, 모욕’이라는 말 중 가장 강한 어감을 가진 ‘굴욕’을 택했다”고 했다.
철학적 메시지가 강한 프랑스 작품이 관객에게 어렵진 않을까.
두 배역의 이름은 ‘소리’와 ‘현준’이다. 캐릭터에 얽매이지 않되 무대 위 감정에 충실하자는 취지다. “우리도 작품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감정을 쏟아낼 뿐”이라는 두 배우가 결국 관객에게 던지는 물음은 이것이다.
“저희도 누가 답 좀 알려주면 좋겠어요. 누군가 미칠 듯 사랑했던 그 마음,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요?”(문소리, 지현준)
7∼27일.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 3만 원. 17세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