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가 불법 이민자의 유입을 막기 위한 남부 국경장벽 건설에 36억 달러(약 4조3450억 원) 규모의 군 예산을 사용할 수 있도록 4일(현지 시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연기, 중단되는 127개의 군사시설 관련 프로젝트에는 한국의 ‘CP 탱고’와 군산공군기지 2곳이 포함됐다.
국방부는 마크 에스퍼 국장장관이 이날 “남부 국경장벽 건설 프로젝트에 군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36억 달러 규모의 군 예산 전용에 대한 승인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남부 국경지대 11곳에서 모두 175마일(280㎞)에 이르는 장벽 건설 프로젝트를 지원하게 된다.
127개 프로젝트 리스트를 뜯어보면 미국 내에서는 뉴욕, 노스캐롤라이나, 텍사스, 유타, 플로리다 등 23개주의 프로젝트가 포함됐다. 콜로라도주의 우주 콘트롤 시설, 알래스카주의 미사일 발사장 확장 등 사업도 연기될 처지다.
국방부는 “해당 사업들이 취소된 게 아니라 지연되는 것일 뿐이며, 관련 예산 확보를 위해 미 의회를 비롯해 동맹국들과의 ‘비용 분담’을 논의할 계획”이라는 입장이다. 외교소식통은 “리스트를 보면 한국만 대상이 아닌 해외의 모든 프로젝트들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미국이 자국 상황과 군사적 목적 등을 감안해 승인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CP 탱고 등에 대한 예산 집행의 중단이 최근 한미동맹의 균열 조짐과는 상관이 없고, 한국이 26개 주한미군 기지 반환을 요청한 것에 대한 맞대응의 성격은 더욱 아니라는 것.
그러나 CP 탱고와 군산 공군기지의 예산 집행 중단은 결과적으로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의 또 다른 근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 측은 군 예산의 국경장벽 전용 논의가 본격화되기 전인 올해 초에도 CP 탱고의 운영, 보수비 일부를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고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부 국경장벽 건설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으로, 그는 이를 위한 예산 집행을 놓고 의회와 대립을 계속해왔다. 이를 마련하기 위해 사상 최장기 연방정부 셧다운(업무 정지)을 강행했고, 대통령의 예산 전용이 가능하도록 국가비상사태까지 선포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서로 얼굴을 붉히며 언성 높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예산 확보에 실패하자 결국 군 예산을 끌어다 쓰는 무리수를 감행한 것이다.
국방부는 앞서 3월 이를 위해 예산 전용이 가능한 군 건설사업의 검토 대상 목록을 의회에 제출했다. 조너선 호프먼 국방부 대변인은 이번 승인 결정에 대해 “어떤 군 프로젝트가 연기 가능하고, 어떤 프로젝트가 남부국경 지대의 국가비상사태와 관련해 군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지 등에 대해 검토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군 예산을 투입하는) 국경장벽 건설은 국토안보부의 국경 분야 미션 수행을 위한 군 활동의 효율성을 높여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