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은 지난해 리튬배터리가 장착된 손목시계 등을 신고 없이 화물칸으로 운송해 역대최대치인 90억 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제주항공 제공
변종국 산업1부 기자
한 국적항공사 임원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지난달 30일 국토교통부 행정처분심의위원회(행심위)가 국내 항공사 4곳에 총 24억6800만 원의 과징금을 매긴 걸 보고 나서였다.
항공업계는 행심위가 끝날 때마다 불만의 목소리를 높인다. 과징금 수준과 부과 방식이 국제 기준에 비춰 볼 때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가혹하다는 것이다. 특히 2분기(4∼6월) 국내 항공사들이 모두 영업적자를 낸 터라 부담이 크다고 했다.
한국만 유독 항공 과징금이 높은 것은 2013년 아시아나항공의 샌프란시스코공항 착륙 사고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파트와 LG전자 헬기 충돌사고 등이 계기가 됐다. 국토부는 2014년에 과징금을 확 올렸다. 하지만 업계에선 어떤 기준으로 과징금이 이전보다 최대 90배까지 올랐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운항 서류 하나 빠뜨린 것이나 보고서상의 실수 등을 이유로 과징금을 수억 원씩 부과하는 게 과연 합리적이냐”고 반문한다.
항공업계는 한국의 행정처분이 ‘안전 확보’보다 ‘징벌적 처벌’에 초점이 맞춰진 점이 문제라고 본다. 미국과 유럽은 과징금보다 항공 관련 조사와 감독을 수행하는 항공안전감독관의 재량하에 행정지도와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항공안전감독관이 보기에 심각한 안전저해 행위가 아니거나 안전교육이 효과가 있을 걸로 판단하면 행정지도 처분만 내린다. 반면 한국은 과한 과징금만 부과할 뿐 안전교육 등에는 소홀하다. 허 교수는 “회초리로 때리기만 한다고 학생 성적이 오르겠는가. 행정우월주의적 발상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현재 국토부는 행정처분 가감 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항공 정비 등은 부실할 경우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지므로 처벌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행정처분의 결과가 그저 벌주기가 아니라 안전을 담보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유례없이 과도한 과징금이 한국 항공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건 아닌지도 고려해야 한다.
변종국 산업1부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