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학자가 본 식민지 근대화론’ 책 발간한 도리우미 유타카 박사 수탈론-근대화론 끊임없이 논쟁… 민족간 경제불평등 분석은 미흡 당시 조선에 투자된 자금 상당부분 日 청부업자와 지주들 손에 들어가 조선의 경제발전 두려워한 日 쌀 단일작물의 모노컬처로 만들어
도리우미 유타카 박사는 일본 우익의 주장과 달리 조선총독부가 벌인 각종 인프라 공사는 일본인 건설업자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왼쪽은 전북 군산과 익산의 익옥(益沃)수리조합이 건설한 제방 대아제(大雅堤), 오른쪽은 1931년 함경북도 청진항 개축 공사 모습. 지식산업사 제공
하지만 식민지 근대화론은 민족 간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서는 딱히 힘 있는 분석을 내놓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비판한 신간 ‘일본학자가 본 식민지 근대화론’(지식산업사·1만8000원)은 조선총독부의 재정을 분석해 그 원인을 밝힌 책이다. 특히 조선총독부와 유착한 일본인 토목청부(건설)업자들이 철도 제방 등의 건설 과정에서 한국인을 배제하고 이익을 독점해 나가는 한편 조선인 노동자의 저임금을 유지하는 과정을 조명했다. 저자 도리우미 유타카 서울대 박사(57·한국역사연구원 상임연구원)를 5일 만났다.
―식민지 조선은 경제가 발전했나.
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저서 ‘일본학자가 본 식민지 근대화론’을 설명하는 도리우미 유타카 서울대 박사.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대다수 조선인이 빈곤했던 원인은….
“일제가 공업화 대신 쌀의 ‘모노컬처’(단일작물 농업) 경제를 강제했기 때문이다. 쌀값은 1918, 19년경 고점을 치고 장기간 하락한다. 궁핍한 게 당연하다. 수탈도 빈곤의 원인이지만 이게 가장 크다. 근대화는 일그러진 것이었다.”
―수탈이 있었는가.
“강제로 빼앗는 것뿐 아니라, 무력이나 권력을 이용해 대가를 조금밖에 지불하지 않고 재산을 가져가거나 부당 이익을 챙기는 것 또한 수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수탈은 많았다. 총독부 예산에서 토목 관련비가 재정 지출의 약 20%다. 한데 총독부는 겉으론 공정한 토목 정책을 표방하면서 제도적으로는 조선인 업자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조선인 노동자들은 일본인 업자 밑에서 저임금으로 일했다. 하루 임금은 총독부 공식 통계(1엔)의 절반 이하였고, 그나마도 지불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착취다.”
―대표적 ‘수탈론자’인 허수열 충남대 명예교수는 수탈이란 용어는 더 이상 쓰지 않지만 “일본인들이 토지, 자본 같은 생산수단을 집중 소유해서 소득 분배가 불평등했다”고 주장했는데….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국내 학자를 ‘매국노’ 취급하기도 한다.
“근대화론은 비판자인 내가 보기에도 매우 강력한 주장이다. 그러나 인터넷 등에서 제대로 된 비판 논리를 찾아보기가 힘들고 감정적인 대응이 다수다. 그런 식으로는 ‘어쨌든 일본이 조선을 발전시킨 것 아니냐’는 일본 우익의 논리를 깨기 힘들다.”
―일본인과 조선인의 경제력 격차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는….
“1928년 통계를 보면 당시 조선 인구의 겨우 2.45%인 일본인이 우편저금의 86%를 갖고 있었다. 1인당 조선인보다 245배 많은 자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일본인이 일본의 잘못을 연구하고 들춰내게 된 동기는….
“(일제를 비판한 법학자) 사사가와 노리카쓰 일본 국제기독교대 명예교수님의 말씀처럼 ‘더 좋은 일본을 만들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