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서 준 책 대신 요약본 보는 직원들 그렇지 않은 이들과 10년 후 비교하면 다른 시간의 밀도로 실력 차이날 수밖에 업무가 요구하는 바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정치인 고위 공무원들부터 질문 던져봐야 거창한 것 부르짖기 전 해야 할 일 해야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그래서일까. 나는 살면서 종종 이 슬로건을 되새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예전 회사에서 책을 사서 팀장들에게 나눠 주었다. 좋은 책이니 읽으라는 취지였다. 루트번스타인 부부가 쓴 ‘생각의 탄생’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452페이지나 될 만큼 두꺼운 데다 내용도 녹록지 않아서 진도가 쭉쭉 나가지 않았다. 회사가 일부러 사서 준 책이니 꼭 독후감을 써내라고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책을 읽든가, 읽지 않고 후환을 감당하든가, 이 두 가지 말고 무슨 방도가 있을까.
지름길이 나쁘냐고 물을 수 있겠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늘 좋거나 이로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엔 좋기만 한 것, 나쁘기만 한 것이란 없어서 수고를 들이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함량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마치 덜 우려낸 곰탕 국물이 진하지 않고 맛이 떨어지는 것처럼. 나는 이것을 ‘지름길의 덫’이라 부르고 싶다. 지름길을 걸으면 실력이 잘 쌓이지 않는다.
그 후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미련하리만치 책을 다 읽고 다른 한 사람은 영리하게 요약본을 읽으며 10년을 지낸다고 치자. 다른 일도 그런 식으로 한다고 치자. 10년 후 두 사람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그들이 도달한 지점은 같을까, 다를까? 밀도를 생각해 봐야 한다. 겉으론 비슷해 보이나 내실은 다른 시간의 밀도를.
경력 사원을 소개할 때 우리는 보통 ‘○○회사 10년 차’라고 한다. 듣는 사람도 알아서 짐작하고 판단한다. ○○회사에서 10년을 일하고 배우고 견뎠다면 괜찮을 거라고. 하지만 여기서 마음을 놓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회사 10년 차가 말해주는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고, 사람마다 10년의 밀도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그 일이 요구하는 것을 제대로 해내면서 10년을 맞았을 테지만 어떤 이는 지름길을 구하고 요약본을 찾아 영리하게 처신하며 10년 차가 되었을 수도 있다. 자기소개서나 커리어의 햇수만으론 그 사람의 진짜 역량을 알아내기 힘들다. 막상 일을 같이 해보면 실망스러운, 허명(虛名)인 경우가 생각보다 많은 것이다.
일전에 행정고시에 합격해 임용을 앞둔 사무관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일이 있다. 나는 감히 젊은 고급 공무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민은 뛰어난 공무원을 가질 권리가 있으니 앞으로 일을 잘하시라고! 일을 잘하려면 당신들의 업무와 자리가 요구하는 바를 하라고. 거창한 것을 부르짖기 전에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일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모두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업무가 요구하는 바를 제대로 하고 있는가’라고. 하지만 누구보다도 이 질문을 꼭 던지고 생각해봐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가들, 고위 공무원들, 소위 공복(公僕)이라는 사람들. 또 국민 세금으로 밥을 먹지는 않으나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 국민의 지지와 존경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이번 추석에 반드시 시간을 내어 물어보면 좋겠다. 나는 내 업무와 자리, 위치가 요구하는 바를 하고 있는지를. 해야 할 바는 하지 않으면서 거창한 언사만 많거나 요구가 많은 사람들, 그들에게 이 슬로건이 말하는 것 같다. Just Do It! 바로 그것, 해야 할 바를 하라고!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