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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방치된 연구장비, 한 곳에 모아 연구효율 높인다

입력 | 2019-09-09 03:00:00

대학장비 24% 제대로 활용 안돼
‘핵심연구지원센터’서 장비 모아 대학 20곳에 분야별 설치했더니
활용도 높아지고 장비 수리비 절감… 지역 중소기업에서도 활용 가능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경희대 광전자소재·소자분석 전문센터에서 김성수 센터장(왼쪽)과 연구원이 분석장비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의 빛 특성을 측정하고 있다. 용인=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류성우 수원대 화공신소재공학부 교수(신소재융합기기분석센터장)는 강철보다 10배 강하고 전기적 성질이 우수한 소재인 탄소섬유를 연구하는 젊은 재료공학자다. 탄소섬유를 자동차, 항공기, 풍력발전기 등 현실에서 응용할 수 있도록 가공하고 대량 생산하는 기술을 집중 연구하고 있다.

류 교수는 최근 일본 수출 규제 소식에 걱정이 많다. 많은 특허와 원천기술을 일본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류 교수는 “일본 기업인 도레이와 미쓰비시화학, 테이진 세 곳이 특허를 장악하고 있다”며 “한국 수출입품의 절반가량이 이들을 비롯한 일본 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국도 20여 개 기업이 한 해 8600t(2017년 기준)의 생산 능력을 가진 세계 5위권의 탄소섬유 생산국이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을 수출하고 있다. 하지만 스포츠용품 등 한정된 목적으로 사용되는 소재에 치중하고 있어 풍력발전과 자동차, 항공우주 등 최근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한 고부가가치 소재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대대적으로 육성 의사를 밝힌 수소자동차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수소저장탱크도 탄소섬유로 만들지만 일본이 압도적 우위다.

류 교수는 대학 내의 소재 개발 역량을 모으기 위해 올해 5월 수원대 미래융합관 안에 ‘신소재융합기기분석센터’를 설립했다. 교육부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국가연구시설장비진흥센터에서 추진하는 기초과학 연구역량 강화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앞으로 6년간 연 3억∼6억 원을 지원받아 대학 내에 흩어진 연구 장비를 한곳에 모을 계획이다. 장비 및 분석 전문가를 고용해 체계적인 분석과 공동 연구도 실시한다. 이렇게 장비와 인력이 모인 센터를 ‘핵심연구지원센터’라고 한다. 올해 전국 20개 대학에 재료와 화학, 에너지, 환경, 물리, 기계 분야 센터가 설치돼 국가적 기술 역량을 높이기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센터의 가장 큰 목적은 교수 등의 개별 연구실에 흩어져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던 장비를 한데 모아 공동으로 이용하며 소재 등 공동 연구에 활용하게 하는 것이다.

경희대 국제캠퍼스에 세워진 핵심연구지원센터인 광전자소재·소자분석 전문센터 김지숙 연구원은 “대학 연구실을 가 보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방치된 장비가 많다”며 “핵심연구지원센터를 구축해 한자리에 모으면 분석 전문가가 관리도 해주고 전문적인 분석도 도와준다. 연구 효율과 기술, 범위 등이 크게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가연구시설장비진흥센터에 따르면, 대학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장비는 23.8%로 거의 전체의 4분의 1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이 14% 수준인 데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정부가 2018년 4개 핵심연구지원센터를 사전 구축해 시범 운영해 본 결과, 장비 공동 사용은 150건 이상으로 늘어 활용도는 높아지고, 장비 수리비는 3분의 1 이하로 줄어드는 등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대학 연구자가 가장 큰 수혜 대상이지만, 지역 중소기업에도 문이 열려 있다. 분석 역량이 부족한 기업들이 대학 장비로 과학적인 분석을 할 수 있다. 류 교수는 “보석 기업, 자동차 관련 기업 등이 벌써 소재나 표면 분석을 의뢰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화성, 평택, 오산 등 경기권에는 많은 중소기업이 산재해 있지만 자체 연구소나 전담 분석 장비, 인력을 갖춘 곳이 거의 없는데 센터가 이들 기업의 분석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액정디스플레이(LCD)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디스플레이 소재와 소자 분석을 지원하는 광전자소재·소자분석 전문센터 역시 대학과 중소기업 모두에 문이 열려 있다. 김성수 센터장(경희대 화학공학과 교수)은 “기업이 70% 이상으로 가장 수요가 많다”며 “인근에 삼성전자가 있다 보니 좋은 소재나 부품을 개발해 기업에 제안하고 싶어 하는 중소기업이 많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들이 대부분 체계적인 분석을 할 수 없어 성능을 인정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옥석을 가릴 수 없으니 대기업으로서는 몰려드는 중소기업의 제안에 업무가 마비되고, 중소기업은 우수성을 입증하지 못해 납품 기회를 얻지 못한다. 김 교수는 “좋은 소재를 만들어도 제품화하면 예상 못 한 문제가 발생하거나 성능이 떨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이런 부분을 시제품 제작과 분석을 통해 지원하니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장비 전문가를 키우는 것도 센터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소재처럼 장기간의 연구와 정확한 분석이 중요한 분야는 분석 장비를 다루는 전문가가 필수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는 연구원 외에 정규직 장비 분석 전문가를 고용해 실험과 분석의 품질을 높이는데, 이런 체제를 국내에 도입하기 위해 센터에는 박사급 장비 전문가를 반드시 채용하고 주기적으로 장비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조혜미 신소재융합기기분석센터 연구원은 “장비마다 알려지지 않은 응용, 고급 기능이 많다”며 “분석 전문가로서 대학 및 기업 연구자들에게 전문적인 분석 결과를 제공하기 위해 해마다 여러 주에 걸쳐 교육을 받고 또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성·용인=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