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장기기증의 날을 맞아 재단법인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홍보대사로 위촉된 왕홍주 씨와 딸 수현 양.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김재희 사회부 기자
2010년 7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중환자실. 필사적으로 심폐소생술을 하던 의료진의 손이 멈췄다. 뇌사였다. 2007년 7월 17일에 태어나 갓 세 돌을 넘긴 왕희찬 군은 감기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증상이 급격하게 악화됐다. 아버지 왕홍주 씨(55)의 ‘심장’은 그날 이후 여전히 멈춰 있다.
희찬 군은 1992년 왕 씨가 아내 송미정 씨(53)와 결혼하고 15년 만에 어렵사리 얻은 복덩이였다. 전국에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가 있다는 병원은 안 다닌 곳이 없다고 했다. ‘희망이 가득 찬다’는 의미로 이름도 ‘희찬’으로 지었다.
10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왕 씨는 단 한 번도 장기 기증 결정을 후회한 적이 없다. 이 세상 어딘가 희찬 군이 다른 사람의 몸 안에 살아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왕 씨는 “나와 같은 공기를 마시며 새 생명으로 숨쉬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며 “언제 어떤 모습으로 희찬이를 만날지 몰라 주변 사람들을 더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왕 씨는 9일 장기기증의 날을 맞아 재단법인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홍보대사로 선정됐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생명을 주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그에 비해 장기 기증자에 대한 예우는 부족하다고 유가족들은 입을 모은다. 사후 처리나 장례 과정에서의 지원은 여전히 미비하다. 가장 큰 아쉬움은 기증을 받은 이식자들의 소식을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은 장기 매매를 막기 위해 기증자와 이식자의 정보를 공개할 수 없도록 했다. 왕 씨는 “아이의 장기를 받은 사람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만이라도 알고 싶다”고 했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관련 기관 중재하에 이식인과 기증인 유가족이 편지로 안부를 주고받고 만나기도 한다”고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대기자에 비해 기증자가 턱없이 적다. 새로 등록한 대기자는 2016년 3856명, 2017년 4258명, 지난해 4915명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지만 연간 뇌사 장기 기증자는 2010년 573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17년 515명, 2018년 449명으로 내리막길이다.
유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은 기증자들의 삶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것이다. 숭고한 뜻에 합당한 예우가 뒤따라야 생명 나눔을 잇는 결심이 늘어날 수 있다.
김재희 사회부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