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물에 빠지는 것
올해 5월 개봉한 안주영 감독의 영화 ‘보희와 녹양’. 무비스트 제공
‘보희와 녹양’ 포스터. 무비스트 제공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소설 ‘창백한 불꽃’에서 다양한 자살 이미지를 검토하며 장단점을 논한 바 있다. 관자놀이에 권총을 댄 신사, 독약을 마시는 숙녀, 욕조에서 정맥을 긋는 삼류 시인 등. 나보코프가 보기에 가장 이상적인 자살 방법은 항공기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승무원이 말리지 않을까? 물에 빠지는 것은 어떤가? 나보코프에 따르면 물에 빠지는 것은 항공기로부터 추락보다 열악한 방법이다. 자칫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올여름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들 중 단연 가장 사랑스러운 영화, ‘보희와 녹양’은 한 사내가 평상복을 입은 채로 입수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그것은 옷만 물에 잠기는 빨래나 평상복을 벗고 하는 수영과는 다르다. 평상복을 입은 채로 그대로 물로 걸어 들어간다는 것은, 자신의 일상의 삶을 통째로 물에 집어넣는 일이다. 그것은 우는 것이 금지된 다 큰 어른이 크게 우는 방식이다. 어른은 아이와 달라 비상벨처럼 울어댈 수는 없으므로, 눈물을 보다 큰물로 가릴 수 있는 강이나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나보코프가 말한 대로 물에 빠진다고 반드시 죽는 것은 아니므로, 그리고 물에 빠지는 일은 때로 갱생의 의미를 띠므로, 이 첫 장면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물에 빠진 이 사내는 과연 죽을 것인가, 아니면 갱생할 것인가.
영화의 나머지 부분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대답하는 과정에서 보희와 녹양은 성(性) 정체성을 재고하고(그 점에서 ‘꿈의 제인’(2016년)을 잇고), 가족의 재구성을 고민하고(그 점에서 ‘가족의 탄생’(2006년)을 잇고), 성장의 의미에 대해 묻고(그 점에서 ‘어른도감’(2018년)을 잇고), 급기야 예술이 갖는 의미를 환기한다. 자신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다큐멘터리를 찍는 녹양에게 보희가 묻는다. 그걸 뭐에다 쓰려고? 녹양이 대답한다, 그냥. 그러나 “그냥” 만드는 예술이 때로 인간을 구원한다. 보희와 녹양이 2019년 여름밤 나를 잠시 구원했던 것처럼.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