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CRS, 금기시해온 핵확산 거론

○ 비건의 북한, 중국 향한 ‘쌍경고’
비건 대표는 이날 미시간대 특강에서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과 나눴던 대화를 소개하며 “북한 핵 무기를 제거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실패할 경우 역내 핵 확산 도전에 대응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대북) 확장 억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핵무기 프로그램을 중단했는데 그들 영토에 핵무기나 단거리탄도미사일이 날아다닌다면 이런 확신이 얼마나 오래가겠느냐”고 했다.
이날 발언은 우선 북한을 겨냥해 비핵화 협상으로 조속히 복귀하라는 메시지로 보인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실무협상을 거부하고 대미 비난성명을 이어가고 있는 데다 리용호 외무상이 유엔 총회마저 불참하겠다고 하자 나온 조치라는 것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북한이 끝까지 핵을 갖게 되면 (대응 차원에서) 한일 핵무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북한의 핵이 의미가 없다. 조금이라도 가치가 있을 때 포기하고 내려놓으라’는 차원에서 한 이야기 같다”고 분석했다.
○ 정부는 “검토 안 해”
문제는 비건 대표가 꺼낸 핵무장론이 한국에 미칠 영향이다. 정부는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 핵 공유 등을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한미 간 조율되지 않은 핵무장 가능성이 가볍게라도 거듭 거론될 경우 한반도 안보 지형뿐만 아니라 국내 여론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과거 전통적인 미 행정부보다 북핵 협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동북아) 역내 핵 확산 문제에 좀 더 유연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인 비건 대표가 의도적으로 ‘천기누설’을 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이 2017년 저서 ‘혼돈의 세계’에서 지적했듯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이 생존을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핵 버티기’에 나섰을 때 미국이 핵무기 확산 저지 논리를 한 수 접은 전례도 있다. 한 안보 전문가는 “북한의 위협을 더 이상 막을 수가 없고 중국의 부상이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할 때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도 고려할 수 있는 옵션이 된다는 운을 떼 본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비건 대표의 발언과 같은 날 미 의회조사국(CRS) 또한 ‘비전략적 핵무기(Nonstrategic Nuclear Weapons)’ 보고서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핵무장 요구 가능성을 언급했다. 미국과 러시아 간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탈퇴와 관련한 분석이었지만 “미국의 전술핵 등에 따른 핵 억지력을 믿지 못하는 동맹국들은 자신들이 핵무기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이 아이디어를 고려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특히 한일 갈등을 빚고 있는 와중에 언제든 핵무장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일본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도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핵공유든 전술핵 재배치든 현재 비핵화 프로세스를 통째로 흔들 수 있는 이야기다. 현재로선 수용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