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커우 하원의장 퇴임에 쏟아진 박수 존 버커우 영국 하원의장(왼쪽)이 9일 런던 국회의사당에서 의장직과 하원의원직 사퇴를 발표한 뒤 야당 의원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고 있다. 2009년부터 하원의장을 수행해 온 그는 의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반대하고 노동당적 성향을 보여 보수당으로부터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런던=신화 뉴시스
2016년 6월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 가결 후 3년째 빈사 상태에 빠진 영국 정계에서 유일하게 존재감을 보였다는 평가를 듣는 존 버커우 하원의장(56)이 9일 의장 및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2009년부터 하원의장을 지낸 그는 지난해 사퇴할 계획이었지만 브렉시트 대혼란으로 계속 의장직을 맡아 왔다.
BBC 등에 따르면 이날 그는 하원에서 “당초 브렉시트 예정일이었던 10월 31일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그의 소속 정당인 집권 보수당이 아닌 야당 노동당 의원들이 그의 노고를 치하하며 기립박수를 보내 눈길을 끌었다.
버커우 의장은 1963년 미들섹스에서 루마니아 유대계 후손으로 태어났다. 부친은 택시기사였다. 10대 시절 테니스 선수로 활약했지만 천식으로 접었고 에식스대 졸업 후 로비회사에서 일하다 정계에 입문했다. 귀족 가문의 옥스브리지(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 출신이 장악한 정계 주류와 거리가 멀지만 뛰어난 언변과 친화력으로 첫 유대계 하원의장이 됐다.
노딜 브렉시트 강행을 위해 조기 총선 승부수를 던진 존슨 총리의 도박은 이날 또 실패했고 혼란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날 하원은 조기 총선 안을 찬성 293표, 반대 46표로 부결시켰다. 의결 정족수인 434표(전체 650석 중 3분의 2)에 한참 모자랐다. 4일 같은 내용의 표결 때보다 찬성표가 5표 더 줄었다. 반면 존슨 내각의 노딜 브렉시트 추진안 관련 정보를 모두 공개하라는 의안은 찬성 311표 대 반대 302표로 가결했다. 총리의 의회 장악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상징하는 대목이다.
10월 31일로 예정된 브렉시트는 내년 1월 31일로 3개월 연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노딜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존슨 총리는 자신의 사임까지 거론하고 있다. 총리가 사임하면 총선이 치러질 수밖에 없고 이때 재집권에 성공하면 다시 노딜을 밀어붙이겠다는 전략이다. 보수당의 과반이 무너진 상황이어서 그는 극우 정치인 나이절 패라지가 이끄는 브렉시트당과 연대해 과반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존슨 내각이 EU 안에서 프랑스 독일에 반감이 큰 헝가리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를 물밑으로 설득해 브렉시트 연장 반대를 이끌어낼 계획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브렉시트 연장은 EU 27개 회원국의 만장일치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