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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종이증권[횡설수설/신연수]

입력 | 2019-09-11 03:00:00


아직도 종이증권이 있었단 말이야? 요즘 TV나 인터넷에서 ‘전자증권시대가 열립니다’라는 광고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되묻는다. 주식을 거래하는 사람들도 대개 종이주식을 본 적이 없고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숫자만 확인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은 증권회사를 통해 한국예탁결제원에 증권을 맡긴 것이고, 제도적으로는 종이증권을 발행하게 돼 있다.

▷추석 연휴가 끝난 직후인 16일부터는 진짜로 종이증권이 사라진다. 실물 주식이나 채권을 아예 만들지 않고 전산시스템 내의 데이터로만 보관 관리한다. 상장회사의 종이증권은 효력을 잃고, 비상장회사의 경우엔 실물과 전자증권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1974년 증권예탁제도가 실시된 이래 가장 큰 변화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종이주식을 장롱 속에 꽁꽁 싸두었다가 증권사에 가져와 보니 절반이 위조 증권이었다든가 하는 일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삼성전자 사례는 기업 쪽에서의 변화를 보여준다. 작년 1월 삼성전자는 주식을 50분의 1로 쪼개는 액면분할 계획을 공시하면서 종이증권 발행 기간 등을 포함해 15거래일의 매매거래 정지 기간을 제시했다. 그러자 외국인 투자자들로부터 “이해할 수 없다”는 항의가 빗발쳤다. 하루하루 급변하는 주식시장에서 한 달 가까이 주식을 거래할 수 없다니? 결국 한국거래소를 중심으로 관계 기관들이 비상대책을 마련해 거래정지 기간을 3거래일로 단축시켰다. 전자증권제가 도입되면 별도 비상대책이 없어도 거래정지 기간이 4, 5일로 줄어들 수 있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33개국이 전자증권제를 도입했고 한국과 독일, 오스트리아 3개국만 아직 도입하지 않았다. 정보기술(IT)이 발달한 한국이 이처럼 늦은 것은 그동안 예탁제도로 인해 증권회사나 일반 주주들이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자증권은 종이증권의 발행과 관리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것은 물론 금융 거래의 투명성을 높여 탈세 방지에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자본시장의 투명성과 효율성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동북아 금융허브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을 국내로 끌어들여 금융산업을 육성한다는 비전이다. 그러나 영국계 지옌그룹이 발표하는 세계 금융중심지 경쟁력 순위(GFCI)에서 서울은 2015년 6위였는데 올해 36위로 떨어졌다. 아시아의 금융허브 홍콩이 시위로 흔들리고 중국 상하이와 선전은 체제 리스크가 상존하는 지금이 한국 금융시장을 키울 시기인 듯한데 정부는 뭘 하는지….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