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서 본 韓日 갈등 후폭풍… 쇼핑몰 텅텅 면세점은 임시 휴업 日언론 “재해 수준… 폐업 나올수도”… 한국 여행사-여객선사도 직격탄 한국전망대-황윤길 현창비 등 섬 곳곳에 양국 역사의 흔적 숱한 갈등 넘고 통신사 교류했듯 과거 굴레 떨치고 함께 나아가야
한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지난달 29일 일본 대마도 북부 히타카쓰항 국제여객터미널 앞 도로가 텅 비었고, 한국인이 경영하는 면세점 앞에도 인적이 없다(왼쪽 사진). 상반기에만도 10여 대의 관광버스가 서 있고, 수백 명의 관광객으로 붐비던 곳이다. 남부 이즈하라 중심부 티아라 쇼핑몰 주변을 지나는 버스의 옆면에 조선통신사 행렬도와 올해 초 열렸던 통신사 관련 행사 안내가 붙어 있다. 대마도=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구자룡 논설위원
일본 대마도(對馬島·쓰시마섬) 남부 이즈하라(嚴原) 중심부의 종합쇼핑몰 티아라 주변 광장. 한국어 안내판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광장은 텅 비어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길 건너 우체국 간판에는 일본어 뒤에 ‘이즈하라 우체국’이라는 한글 표기도 보였다. 시외버스 한글 시간표와 상점 간판, 안내문 등 대마도 곳곳에 한국어가 나란히 적혀 있다.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에 중국어와 한글을 병기한 것을 연상시켰다. 일본 우익 성향 누리꾼들이 “쓰시마가 한국에 점령당한다”고 경고를 날릴 정도로 한국인 관광객들이 북적였던 일본 대마도의 요즘 풍경이다.
지난달 28일 티아라 종합쇼핑물은 평소 한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인적이 끊겨 마치 철시(撤市)한 듯했다. 1층 ‘레드 캐비지’ 슈퍼에는 일본인 노인 고객 한두 명이 전부였고, 2층 특산품 가게는 아예 종업원도 자리를 비웠다.
면세점 ‘구라(藏)’의 출입문에는 ‘한국 돈 사용 가능’ ‘한국어 응대 가능합니다’라는 문구가 내걸려 있으나 문은 잠겨 있었다. 태극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걸려 있던 면세점 앞 8개 깃대 중 6개는 비어 있었다. 광장 여행안내소 여직원은 “성수기인데 한국인 관광객이 끊겨 구라도 임시로 문을 닫은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대상국)에서 제외한 날 대마도에 간 것은 관광객 감소의 여파를 보려고 한 것만은 아니었다. 일본 본토보다 한국에 더 가깝고 부산에서 배로 1시간 10분이면 닿는 곳, 한반도와는 오랜 악연과 교류의 역사를 쌓아온 곳에서 갈등의 회오리로 빠져드는 한일 관계를 생각해 보려는 것이었다.
○ 곳곳에 녹아 있는 한반도 관련 역사
대마도에서 기울어가는 국운의 비애와 ‘망국의 한’을 되새기게 하는 것이 면암 최익현의 순국비와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다. 을사늑약에 반발해 의병을 일으킨 면암은 체포돼 유배 올 때 일본 땅을 밟지 않겠다며 양쪽 짚신 바닥에 고국의 흙을 한 줌씩 담아 왔다고 한다. 구치소에서 상투를 자르려 하자 단식으로 맞서다 아사해 순국했다(황백현 ‘대마도 역사 기행’). 구치소가 있던 터 주변에 티아라 쇼핑몰이 들어섰고 면암의 장례가 치러졌던 사찰 슈센지(修善寺)에는 순국비가 세워져 많은 한국인 관광객이 찾는다.
덕혜옹주가 1931년 강제로 대마도주의 세손과 정략결혼을 한 뒤 대마도를 방문했을 때 동포들이 결혼 봉축 기념비를 세웠다.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던 기념비를 찾아 한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닿는 곳에 세워 놓았다.
한반도의 아픈 역사가 관광상품화되고, 몰려오는 한국인들에게 일본이 경계심을 갖는 곳, 일본을 응징하자고 관광을 중단하자 일본 우익들이 속으로 반가워하는 곳, 대마도의 의미는 한국과 일본 모두에 복잡하기만 하다.
○ 조선통신사 황윤길 현창비의 교훈
이즈하라 외곽의 야트막한 산 중턱에 세워진 ‘통신사 황윤길 현창비’.
황윤길은 교토(京都)에 갔다 돌아가는 길에 대마도주 소요시토시(宗義智)로부터 조총 2정을 받아 조정에 바치면서 침입 대비를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요시토시는 도요토미가 1만8000여 명의 병력으로 임진왜란을 일으킬 때 5000여 명을 동원해 참가한 자다.
○ ‘관광 보복의 역설’
“3개월 전 50% 특가로 돈을 지불했는데 취소해도 돌려주지 않는다고 해서 왔어요!” “딸이 오래전 예약해서 바꾸거나 취소하지도 못한다고 해서….”
대마도 단체 관광객과 가족 관광객이 누가 굳이 묻지 않아도 하는 말이다. ‘일본 가지 맙시다’에 동참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린 것이리라. 대마도를 오간 한국인 관광객은 8월 29일 272명, 9월 2일 246명 등으로 예년 이맘때 하루 3000여 명에 비해 뚝 끊겼다.
일본 언론은 “수도꼭지가 잠겨 대마도가 마르고 있다” “재해에 준하는 사태”라며 위기감을 나타냈다. 갈등이 장기화하면 관광 관련 종사자들이 본토 규슈(九州) 후쿠오카(福岡) 등으로 빠져 나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관광 중단은 주로 숙박 식당 렌터카 등 관광과 낚시 분야로 대마도에 진출한 200여 명의 한국인이나 부산의 대마도 전문 여행사, 여객선 선사들에게도 큰 피해를 안기고 있다.
대마도 관광업에 종사하는 한국인들은 관광 중단 사태를 계기로 일본에서 ‘한국 편중’에 대한 경계령이 내려진 것이 관광 산업 피해보다 아픈 점이라고 했다. 대마도의 관광산업 타격 소식을 전하는 일본 언론 기사에는 “국익을 위해 잘됐다”는 댓글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인의 땅 매입 비율이 0.26%가 넘었다며 “한국이 쓰시마를 다 사간다”는 경고도 수년 전부터 나오고 있다. 대마도에서 10년 넘게 거주했다는 A 씨는 “관광산업 등을 통해 대마도가 자연스럽게 한국 경제의 영향권으로 들어오고 있었는데 제동이 걸리게 됐다”고 말했다.
○ 조선과 왜의 국서를 위조해 살아남았던 대마도
임진왜란이 끝난 뒤 대마도주 소요시토시는 선조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국서와 국새를 위조하는 ‘간지(奸智)’를 부려 양측의 교린을 유도했다. 200년 이상에 걸쳐 12차례 오간 조선통신사의 물꼬를 텄다. 이즈하라의 시내버스 앞과 옆면에까지 조선통신사 행렬도가 그려져 있다. 티아라 쇼핑몰 주변에는 1811년 마지막 통신사 일행을 접대했던 장소라는 표지석이 3개나 세워져 있다.
대마도가 한반도와 우호 교류할 당시 경제와 문화가 번성했음을 섬 곳곳에 새겨 놓은 통신사 행렬도와 기록에서 볼 수 있다. 반면 왜구의 근거지일 때는 토벌의 대상이었고 전쟁이 나면 장정이 징발돼 나갔다. 이번에는 과거사 갈등으로 ‘관광 중단’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일은 불구대천의 전란을 겪고도 통신사 교류를 했고, 천추에 못 잊을 강점기를 거친 후에도 동아시아 번영의 역사를 함께 썼다. 대마도 곳곳에 남은 역사의 흔적과 텅 빈 쇼핑몰, 국제선여객터미널 등은 양국이 빨리 진정한 과거사 청산을 통해 ‘역사의 굴레’를 벗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충고하는 듯했다.
대마도=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