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 Chet Atkins ‘Sails’(1987년)
이렇게 비가 내리면 이제는 영화 ‘기생충’이 생각난다. 따지고 보면 물처럼 순한 게 없는데 그들이 뭉쳐 순리에 따라 낮은 곳에 임하면 때로 무엇보다 사나운 난리를 부린다. 물난리다.
반지하에 오래 살았다. 지방 출신으로서 상경해 없는 살림에 방값 몇만 원 아끼겠다고 조금 싼 반지하에 자진해 틀어 앉았다. 영화를 보면 곱등이가 한 번 등장하는데, 그 정도면 애교다. 반지하에는 때로 다른 더 징그러운 벌레가 등장하고 퇴장하기 일쑤였는데 곱등이는 그나마 귀여운 편이었다.
그때부터였다. 한강이 보이는 고급스러운 오피스텔에 한 번쯤 살아보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 그 비싼 곳에서 창문을 향해 놓인 책상에 앉으면 어쩐지 서울 냄새가 은은하게 나는 근사한 소설 같은 거라도 뚝딱 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독하지만 달콤한 밤을 사랑하는 작가 같은 부류가 될 자신이 있었다.
실은 스무 살 때 친구네 집에 간 뒤에 생긴 가당찮은 동경 탓이다. 거대한 거실 창밖으로 한강이 바투 시야에 들어오는 그곳이 부러웠다. 친구 부모님께 “안녕히 계세요!” 외치며 나올 때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맞다! 쳇 앳킨스! ‘Sails’ 앨범. 잘 때마다 들어. 매일매일.”
미국의 컨트리 기타리스트로서 유려한 연주 기교를 지닌 명장 앳킨스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 ‘Sails’는 낮은 평가를 받기 일쑤다. 1980년대의 뉴에이지 열풍에 기댄 맥없는 연주 모음집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호텔 로비나 엘리베이터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친숙한 곡들로 가득한 이 음반은 그래도 내 인생의 앨범 중 하나다.
시원한 파도 소리를 가르며 등장하는 투명하고 꿈결 같은 통기타의 음향. 그 덕에 난 매일 밤 잠들면서 먼 이국으로 떠난다. 고급스러운 해변에서 찬란한 햇살을 받는다. 먼 옛날 그 반지하방에서도 매일 그랬듯이….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