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후 약하지만 정부 발표 잘 안 믿어져… 행동으로 성과를 내 신뢰 회복해야
김광현 논설위원
그해 말 김광두 부의장은 사표를 내고 물러났다. 돌이켜보면 김 부의장이 맞았다. 지금은 누구도 우리 경제가 당시부터 쭉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달라진 것은 “인구구조 탓이다” “기다리면 효과가 날 것이다”고 했다가 지금은 미중 무역 갈등이나 일본의 경제 보복 같은 외부환경에 화살을 돌리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이전 팀과 달리 억지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 경제가 좋지 않은 것은 맞다. 앞으로도 크게 나아질 전망도 별로 없다. 그러니까 나랏빚을 내서라도 살려야겠다, 국회가 도와달라는 전략이다.
책임 있는 당국자의 발언은 자기 예언적 실현을 넘어 시장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뒤가 찜찜한 것은 역시 외환위기 이후 이어져 온 정책 책임자들의 발언에 대한 학습효과 때문일 것이다.
반면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도 적지 않게 작용했기 때문에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같은 장기불황으로 가는 입구에 들어섰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있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괜한 소리로만 들리지 않는 것은 최근 나오는 경제지표가 잿빛 일색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기본 체력이라고 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다. 올해 성장률이 잘해야 2%대 초반이고 1%대에 그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수출이 지난해 12월 이후 9개월 연속 마이너스다. 무역흑자는 3분의 1 토막이 났다. 엊그제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한국의 주력 기업들에 대한 신용등급이 무더기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올 것이 오나 싶다.
불행은 홀로 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미국 중국을 포함해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할 것이라는 ‘R(Recession·침체)의 공포’가 퍼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따라 갈지 모른다는 ‘D(Deflation·저물가 장기불황)의 공포’가 어른거리고 있다. 정치가 경제에 부담을 주는 ‘P(Politics·정치)의 공포’까지 겹쳤다.
1933년 대공황의 한가운데 취임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우리가 단 한 가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바로 두려움 그 자체다”라고 했다. 실제 이상으로 위기를 조장하고, 공포감을 키우는 것은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무엇보다 정부와 기업, 국민 간의 신뢰가 중요한 때다. 그러려면 정부가 지금보다 더 솔직해져야 한다.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과 성과를 보여야 한다. 그러면 공포는 어느새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