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 루브르 개보수로 모나리자 전시실 ‘2시간 기다려 1분 관람’ 불만 폭주 로마-암스테르담도 관광객에 몸살… ‘SNS 인증샷’ 여행문화 개선 필요
지난달 26일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리슐리외관에서 관람객들이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백화점 명품관에서 입장 고객 수를 조절하듯 관람객 옆에 선 검은 양복 차림의 박물관 직원의 지시에 따라 1분가량 그림을 본 후 퇴장해야 한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김윤종 파리 특파원
이곳에서 만난 독일 관광객 파비아 씨(25)는 기자에게 “30도가 넘는 뙤약볕 아래서 한참을 줄을 선 후 박물관 안으로 들어와 표를 사는데 또 줄을 서야 했다”며 이마의 땀을 연신 훔쳤다. 리슐리외관에 오기까지도 ‘앞 사람 뒤통수만 보이는’ 긴 줄을 섰다고도 했다. 그는 “1시간 반을 기다려 모나리자를 실제 관람한 시간은 약 1분에 불과했다. 너무 많은 사람으로 붐벼 명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다. 스트레스만 받고 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파비아 씨의 불만 가득한 표정 뒤로 보이는 모나리자의 신비로운 미소가 대조적이었다.
○ 최소 1시간 기다려야 전시실 입장
간신히 모나리자 앞에 서자 주변 관람객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대는 데 여념이 없었다. 앞 사람을 피해 머리 위로 번쩍 든 스마트폰에 가려 모나리자 관람은 더욱 불편했다. 1분 20초가량이 지나자 박물관 직원이 “나가라”고 지시했다. 자리를 비켜주자 뒤에 있던 대기자들이 또 두 줄로 모나리자 앞으로 몰렸다. 1분이 지나자 이들도 자리를 떠야 했다.
한 관람객은 “모나리자를 보려고 2시간 가까이 기다렸는데 이렇게 짧게 관람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사진이라도 더 찍으려고 했다. 그와 이 직원은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 명화 보존을 위한 개보수
루브르가 이처럼 강력한 통제를 가하는 이유는 내부시설 공사 때문이다. 올해는 다빈치 서거 500주년이다. 기존에 모나리자가 걸려 있던 드농관은 7월 중순부터 개보수 작업에 돌입해 10월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모나리자는 이 기간에 리슐리외관에서 전시되는 것이다.
이 기법을 사용하려면 물감을 여러 번 칠해야 한다. 계속 덧칠하다 보면 물감 사이에 층이 생기고 밑에 있는 물감이 마르면서 그림 표면이 쉽게 갈라진다. 그림 자체에 균열이 있는 만큼 모나리자를 잘 보관하려면 적당한 온도와 습도 유지가 필수적이다. 루브르가 개보수 등을 통해 모나리자 관리에 전력을 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드농관은 1층에 위치한 데다 이동경로가 넓고 비교적 단순해 관람객이 접근하기 쉬웠다. 반면 리슐리외관은 2층에 있어 이동경로가 드농관보다 좁고 복잡하다. 여기에 곳곳에서 인원 통제를 하니 관람객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루브르는 이를 감안해 미리 온라인으로 사전 예약을 한 관람객에게만 모나리자를 개방하고 있다. 이렇게 통제해도 워낙 세계적 걸작을 보려는 사람이 많아 치열한 경쟁과 장시간 대기가 불가피하다. 박물관 관계자는 “하루 3만 명, 매년 10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루브르를 찾는다. 이 중 절대 다수가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온다”며 당분간 이런 현상이 계속될 수밖에 없음을 인정했다. 루브르는 모나리자뿐 아니라 모든 관람객이 시간대별로 사전 예약을 해야 입장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 각국의 문화재 규제
이날도 거리 곳곳에서 사람들이 연신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자 주민들은 시의회에 저녁 시간대 관광객 출입 제한을 요청했다. 한 주민은 “창문 밖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어대니 집 안에서 편히 휴식을 취할 수가 없다”며 “거리의 쓰레기가 늘어난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이탈리아 로마의 명물 ‘스페인 계단’도 상황은 비슷하다. 바로크 양식의 이 계단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특히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배우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곳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이 계단에서 아이스크림, 커피, 음식물을 흘리는 관광객들로 인해 계단의 대리석 색깔이 변질될 정도로 얼룩이 늘었다. 일간 라레푸블리카 등에 따르면 로마 경찰은 지난달부터 계단에 앉거나 음식을 먹는 이에게 최대 400유로(약 52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도 7월 정부 차원의 도시 홍보 광고를 중단했다. 내년 1월부터는 시 주요 명소인 홍등가 관광도 금지된다. 유럽의 관문 스키폴공항이 있는 암스테르담의 광역권 인구는 약 250만 명. 지난해 관광객은 지역 인구의 4배가 넘는 1080만 명에 달했다. 주민보다 훨씬 많은 관광객으로 도시 곳곳이 훼손된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 뉴욕도 5월부터 연간 450만 명의 인파가 몰리는 ‘자유의 여신상’ 관람을 제한하고 있다. 구불구불한 꽃길로 유명한 미 샌프란시스코 롬바드거리도 연간 200만 명의 관광객이 몰리자 내년부터 5∼10달러의 통행료를 받기로 했다.
○ 인증샷이 부추긴 오버투어리즘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관광객 수는 약 14억 명. 문제는 이 많은 인구가 세계 수백만 개 도시 중 300개 주요 도시만 찾는다는 점이다.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우려가 심각하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과도하게 많은 관광객들이 특정 문화유산지에 몰리면서 주민 피해와 환경 훼손이 심각해졌다는 점을 일컫는 신조어다. 소셜미디어가 오버투어리즘 폐해를 부추겼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유명 관광지와 문화재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에 인증샷을 올리는 문화가 대세로 자리 잡았기 때문. 속칭 ‘그림이 되는 곳’에서 셀카를 찍어 소셜미디어에 자랑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 자체가 됐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과시와 허세 위주의 관광 문화가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9일 파리 에펠탑 앞에서 만난 시민 크리스 씨(43)는 “파리에 오는 관광객 상당수는 프랑스 문화유산보다는 ‘내가 유명한 곳에 왔다’는 점을 소셜미디어에 자랑하느라 바쁘다. 거기에 여행은 없다”고 꼬집었다. 영국 브라이턴대 마리나 노벨리 교수(관광학)는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각국 정부는 (돈벌이를 위해) 자국 관광객을 늘리는 데만 몰두했다”며 “자국 문화재도 보호하고, 관광객들에게 질적 만족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람객 통제에 대한 의견은 찬반이 엇갈렸다. 루브르박물관에서 만난 대학생 아니아 씨(21)는 “위대한 작품을 보고 싶지만 이렇게까지 길게 줄을 서고 통제를 받아야 하는지는 모르겠다”며 통제가 과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회사원 베리느 씨(41)는 “훌륭한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면 관람객이 불편해도 최대한 통제하는 게 옳다”고 맞섰다. 정답은 없는데, 불편함은 점점 커지는 셈이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