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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치열한 경쟁이 가져온 피로도, 시대가 힐링 게임을 부른다

입력 | 2019-09-16 12:44:00


어린 시절 학업으로 경쟁하고, 고등학생이 되면 입시 경쟁을 한다. 성인이 되면 다시 취업 경쟁이 시작되고, 나이가 들면 자산과 명예욕으로 경쟁을 하게 된다. 그야말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경쟁의 연속이다.

이렇게 치열한 현실을 잠시 외면하기 위해 다양한 취미를 찾게 되지만, 가장 대중적인 취미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모바일 게임에서 조차 경쟁을 피할 수 없다. 요즘 등장하는 게임들 대부분이 자기만족보다는 남들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섰을 때 오는 성취감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플레이스토어 (출처=구글플레이 캡쳐)


특히, 요즘 유행하고 있는 모바일 MMORPG 장르의 경우에는 경쟁의 집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 레벨업을 해야 하고, 많은 자금을 투입해 장비를 맞추고, 그에 걸맞는 컨트롤 실력까지 갖춰야만 남들이 부러워 하는 랭커가 될 수 있다.

심한 경우에는 게임을 즐기는 것이 여유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숙제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루에 필수적으로 참가해야 할 이벤트가 수십가지라서, 하나만 빼먹어도 순식간에 순위에서 뒤처지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최근 힐링 게임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시대의 필연적인 요구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모든 사람들이 치열한 경쟁의 즐거움을 원하는 것이 아닌 만큼, 경쟁을 벗어나 여유를 즐기려는 이들을 위한 게임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넷마블의 쿵야 캐치마인드는 일반적인 게임을 즐기는 이들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게임일수도 있다. 남들에게 퀴즈를 내기 위해 열심히 그림을 그려야 하고, 더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캐시 아이템을 구입해야 하니 말이다. 이 과정에서 자기에게 얻어지는 이득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정성을 다해 그린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정답을 맞추고, 그 그림이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면, 자기만족을 느끼게 되고, 그것 자체가 힐링이 된다. 때문에 출시된지 한달이 지난 지금도 기지개, 트럼펫 등 전설로 남을 그림들이 매일 매일 쏟아지고 있으며, 조정석의 인기 광고를 패러디한 너도밤나무를 그린 넷마블 원화팀의 한 직원은 회사 내에서 밤나무 화백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많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캐치마인드 너도밤나무 (제공=넷마블)


10일 출시된 라타타스튜디오의 만렙집사 에비츄는 게임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과거 다마고치의 경험이 없었다면, 게임이라고 인정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귀여운 외모로 여성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캐릭터 에비츄가 등장하는 이 게임은, 입양된 에비츄와 주인이 벌이는 좌충우돌 사건을 다룬 원작의 재미를 그대로 담고 있다. 조금이라도 주인을 돕고자 하는 에비츄를 여러 아르바이트에 보내 돈을 모으고, 그 돈을 기반으로 집을 꾸미거나, 에비츄의 귀여움을 더해주는 다양한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다.

언뜻 보면 평범한 육성 시뮬레이션 장르처럼 보일 수 있지만, 개발진이 집중한 것은 에비츄의 육성이 아니라, 에비츄를 통한 대리만족이다. 현실처럼 에비츄도 아르바이트에서 엄청 고생을 하기도 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며 짦은 여유를 즐기기도 한다. 너무 일이 많아 스트레스가 폭발하면 나를 위한 선물로 소소한 아이템을 구입하기도 하고, 무작정 해외로 떠난 뒤 여행의 추억이 담긴 기념품들을 가져와 전시하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한다. 비록 현실은 짧은 휴가도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에비츄의 깜찍한 표정을 보면서 소학행을 즐기는 여유로운 삶을 대리만족하는 것이다.

이렇듯 요즘 등장하는 힐링 게임들을 보면 함께 보내는 시간의 여유 자체를 즐기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실에서야 무조건 시간 대비, 비용 대비 효율부터 따지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지만, 게임에서조차 그렇게 각박하게 살 필요가 있을까? 게임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하는 것이지, 스트레스를 받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에비츄 이미지 (제공=라타타스튜디오)

동아닷컴 게임전문 김남규 기자 kn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