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5월 10일 독일군이 프랑스를 침공했다. 전쟁이 시작됐을 때 독일군도 승리를 자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 달 반 만에 유럽의 거인 프랑스가 독일에 굴복했다. 사실상 승부가 난 것은 보름 만이었다. 20세기 전쟁사의 전설이 된 독일 A집단군의 전격전에 영불 연합군은 손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무너졌다. A집단군 중 19기갑군단을 이끌었던 하인츠 구데리안은 1차 대전 이후 탱크의 기동력에 주목해 전격전 전술을 창안했다. 전술은 아이디어를 낸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 아이디어를 실전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실험과 훈련을 반복하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때로는 기존의 관념, 철학, 상식까지도 바꿔야 한다.
대부분의 개혁은 이 과정을 이겨내지 못해서 실패한다. 구데리안도 무수한 고통을 겪었다. 그 중에서 힘든 것이 소위 임무형 전술지침이었다. 전격전은 영화처럼 탱크가 굉음을 일으키며 달려가는 전쟁은 아니었다. 정작 빨랐던 것은 상황이 발생하고 전차가 멈출 때마다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는 속도였다. 이 속도의 비결이 임무형 전술이다.
임무형 전술의 모토는 상관은 목표만 제시하고 현장상황의 판단과 해결방법은 아랫사람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독일군은 이 지시를 매우 엄격하게 수행했다. 한번은 예하 사단이 상황 판단을 잘못해 진격해야할 때 멈춰버린 적이 있었다. 구데리안은 엄청나게 화가 났지만 “당장 진격해”라고 소리치는 대신 마당으로 나갔다. 그리고 정원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임무형 전술의 지침에 따르면 이럴 경우 어떻게 명령해야 할지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황은 분초를 다투는데, 구데리안은 만사를 제치고 마당을 돌며 적절한 명령어를 찾았다.
어리석어 보이지만 절대적인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하며 거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것. 이런 자세가 임무형 전술의 완성과 전격전의 신화를 만들었다. 우리 사회 전체가 ‘내로남불’에 빠진 것은 이런 자세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에는 정치인을 탓했지만 지금은 누구를 탓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