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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 울린 암센터 파업[현장에서/위은지]

입력 | 2019-09-17 03:00:00


15일 파업 중인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의 로비에 걸린 노조 측 플래카드. 고양=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위은지 정책사회부 기자

“입원실보다 침대도 더 작고, 제대로 치료도 안 되는 상황이니 화만 납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기관은 국민을 살리기 위해 있는 곳 아닌가요….”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15일 오후.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응급실 앞에서 만난 70대 남성 A 씨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A 씨의 부인은 폐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암이 허리로 전이돼 6일부터 방사선 치료를 받기로 했다. 그러나 이날부터 국립암센터 노동조합이 파업을 시작했다. A 씨의 부인은 계획된 방사선 치료를 받지 못하고 열흘을 응급실에서 진통제를 맞으며 지내야 했다. A 씨도 딱딱한 대기용 의자에서 긴 연휴를 버텼다.

A 씨는 “다른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를 받으려면 30일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며 “차라리 여기서 기다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지만 허리가 아파 걷지 못하는 아내를 보면 마음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16일 국립암센터 노사가 임금협상을 타결하면서 2001년 개원 이후 첫 파업이 끝났다. 노사는 이날 오전 시간외수당을 제외한 임금 총액 1.8% 인상, 복지포인트 30만 원 추가 지급 등에 합의했다. 앞서 민노총 산하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국립암센터지부는 6일 임금·단체협약 교섭 결렬을 이유로 파업에 들어갔다.

노조도 사정은 있었다. 암센터 직원 2800여 명 중 조합원은 1000여 명이고, 이 중 80%는 간호사, 방사선사 등 보건직이다. 이들은 타 병원에 비해 임금은 적고 근무 수준은 열악하다고 주장해왔다. 국립암센터 간호사 이직률은 상급종합병원 중에서 높은 편으로 알려져 있다.

파업은 끝났지만 환자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파업 전 500여 명이 입원해 있었으나 진료 차질이 우려돼 다수가 타 병원으로 전원되거나 퇴원했다. 15일 저녁 기준으로 남은 환자는 70여 명뿐이었다. 파업 기간 필수유지업무 부서인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100% 가동됐지만 암 환자를 치료하는 항암주사실, 방사선치료실, 외래진료 등은 가동률이 평소의 50%로 떨어졌다.

파업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다. 그렇지만 생명을 다루는 병원의 파업이 일반 기업의 파업과 동일시돼선 안 될 것이다. 특히 암 환자들이 마지막 희망을 품고 있는 국립암센터라면 더욱 그렇다. 병원동 내부에는 노조원들이 붙인 “우리의 상황을 이해해 달라”는 ‘호소문’과 “파업이 끝나면 더 열심히 하겠다”는 ‘사과문’이 가득했다. 하지만 환자들에게 시급한 건 사과보다 받아야 할 치료를 제때 받는 것이었다.

노사 임금협상이 결렬됐다는 이유로 암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사실상 내쫓는 파업 사태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더욱이 생명의 끈을 붙잡고 병마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암 환자를 볼모로 파업을 벌이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되기 어려울 것 같다.
 
위은지 정책사회부 기자 wiz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