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9·19공동선언에 합의한 지 오늘로서 꼭 1년이다. 김 위원장은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육성으로 비핵화 의지를 밝혔고, 연내 서울 답방까지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평양시민 15만 명 앞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청산하고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했다. 한반도 평화의 전기가 마련될 것이란 기대가 고조됐지만 비핵화는 길을 잃었고, 남북관계는 다시 냉랭하다.
지난 1년 동안 남북 정상이 합의한 비핵화·군사·경제·이산가족·문화체육 등 5개 분야에서 실질적인 진전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은 비핵화는커녕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의 영구 폐기 약속도 실행하지 않았고,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복구와 화상상봉 등을 논의할 적십자회담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부속합의서인 ‘9·19 남북 군사부문 합의’ 중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 시범 철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 일부 후속 조치가 이행됐다. 군사분계선 10∼40km 이내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북한의 기습을 예방할 공중정찰이 제약되는 등 우리 경계태세는 취약해졌다. 반면 북한은 올해만 10번째 대남 타격용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는 등 군사적 위협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2000년 6·15선언과 2007년 10·4선언에 이어 지난해 4·27선언, 9·19선언까지 남북 정상 간 합의가 그저 선언에 머무는 것은 북한이 진정성 있게 비핵화 의지를 증명한 바 없기 때문이다. 1년 전 청와대는 “두 정상은 65년간 이어져 온 한반도 정전 상태를 넘어 실질적 종전을 선언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비핵화 진도가 나가지 않는 한 남북관계의 개선이 결코 평화로 이르는 우회로가 될 수 없음이 자명해졌다. 정부는 임기 내 정치적인 성과를 내려는 대북 조급증을 버리고, 비핵화 원칙을 일관성 있게 견지해야 한다.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의 남북관계 진전은 그래야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