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쇄살인 용의자 찾았다]경찰, 발전된 분석기법으로 확인
○ 올 7월 다시 빛을 본 증거물
경기 화성경찰서 창고에 잠들어 있던 증거물이 다시 빛을 본 것은 올 7월 중순이다. 화성 사건을 비롯한 장기미제 사건을 수사해온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미제수사팀은 최근 DNA 분석 기술의 발달로 사건이 발생한 지 십수 년이 지난 후에 재감정한 증거물에서 용의자의 DNA가 검출된 사례가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리고 화성 사건의 증거물 일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 분석을 의뢰했다. 총 10건의 화성 연쇄살인 사건 중 1990년 11월 15일 화성시 병점동(당시 태안읍 병점5리) 야산에서 발생한 9차 사건의 희생자인 김모 양(13)의 속옷 등 유류품도 대상이었다.
공교롭게도 국내에 DNA 분석기법이 처음 도입된 계기는 화성 사건이었다. 총 10건의 화성 연쇄살인 사건 중 1988년 9월 16일 박모 양(13)이 살해되는 8차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수사 사상 처음으로 음모의 방사성동위원소를 대조하는 분석법을 적용했고, 9차 사건부터 피해자의 시신에서 검출된 정액 DNA를 일본에 보내 감식을 의뢰하는 방식으로 DNA 수사 기법을 처음 도입했다.
다만 당시엔 사건 현장에서 확보한 DNA를 이미 경찰의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의 것과 1 대 1로 대조하는 방식을 썼기 때문에 범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실제로 화성 사건으로 DNA 분석 대상에 오른 용의자만 570명, 모발 감정 대상은 180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엔 기술 발전으로 더 적은 양의 검체에서도 2배 이상 정밀한 유전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됐고, 동시에 분석할 수 있는 대상도 크게 증가했다. 경찰과 국과수가 이춘재의 신원을 특정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경찰은 1991년 4월 3일 화성시 반송동(당시 동탄면 반송리)에서 일어난 마지막 10번째 사건의 희생자 권모 씨(69·여)의 유류품을 비롯해 나머지 증거품도 재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결과에 따라선 추가 범행이 확인될 가능성이 있다.
○ 화성 사건 기록 ‘영구 보존’ 후 계속 추적
1991년 4월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기록이 15년 후까지 남아 미제수사팀에 전달된 것은 경찰이 해당 기록의 영구 보존을 결정한 덕이다. 경찰은 1986년 12월 14일 이모 씨(23·여)가 숨지는 4차 사건이 일어나자 화성에서 일어난 일련의 살인사건을 연쇄살인으로 규정하고 수사를 확대했다. 이후 연인원 205만 명의 경찰이 투입돼 수사와 수색을 벌였다. 용의자와 참고인 명단에 오른 사람만 2만1280명이었다.
하지만 모방 범죄였던 8차 사건의 범인 윤모 씨(52)가 1989년 7월 검거된 것을 제외하곤 성과가 없었고, 결국 10차 사건의 공소시효마저 2006년 4월 2일로 만료됐다. 경찰은 공소시효 완성 1년이 지나면 기록을 폐기하는 다른 사건과 달리 화성 사건의 기록을 영구 보존하기로 했고, 오산경찰서의 강력팀 한 개를 담당 수사팀으로 남겨 가끔씩 들어오는 제보를 확인해왔다. 화성 사건 제보를 받아 수사하는 과정에서 다른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만 1495명을 적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건희 becom@donga.com·구특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