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품 압수 등 강제수사 어려워… 진범 확인땐 민사소송 가능해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 신원이 33년 만에 드러났지만 처벌할 수 없는 이유는 범죄 피의자를 재판에 넘길 수 있는 시한인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화성 연쇄살인은 1986년 9월 15일부터 1991년 4월 3일까지 4년 7개월 동안 경기 화성시 태안읍 일대에서 10명의 여성이 잇따라 강간 살해당한 사건이다. 2007년 12월 이전에 발생한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15년이었다. 이에 따라 가장 마지막에 발생한 10번째 살인사건을 처벌할 수 있는 시한은 2006년 4월 2일까지였다.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강력 범죄자를 단죄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에 따라 25년으로 늘었다가 이후 시효가 없어졌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처벌할 수 없게 되면서 살인죄 공소시효를 늘려야 한다는 논의가 사회적으로 대두됐다. 2007년 12월 형사소송법이 개정돼 살인죄 공소시효가 15년에서 25년으로 늘었다. 결국 여섯 살 김태완 군에게 황산을 뿌려 숨지게 한 범인이 공소시효가 지날 때까지 잡히지 않은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 공분이 일면서 2015년 7월 법이 바뀌어 살인죄 공소시효가 없어졌다.
이번에 신원이 확인된 용의자 이춘재를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경찰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수사에 나설 수는 있다. 하지만 이춘재의 소지품을 압수하거나 체포하는 방식의 강제수사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교도소에 있다는 이춘재가 경찰의 소환 조사에 응하지 않는다고 해도 법원이 체포영장을 발부할 수는 없다”며 “처벌할 수 있는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춘재가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밝혀지면 향후 가석방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처제를 강간 살해한 혐의로 1995년 무기징역을 확정받은 이춘재는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이춘재가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확인되면 피해자 유족이 이춘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낼 수 있는 길도 열린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