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나 오스트리아도 재산비례벌금제를 갖고 있다. 재산비례벌금제는 세금 등을 뺀 순수입을 한 달 30일로 나눈 일수(日收)를 하루 벌금 액수로 정하기 때문에 일수벌금제(day-fine)라고도 한다. 가령 순수입이 한 달 6000유로인 사람은 하루 200유로, 순수입이 한 달 600유로인 사람은 하루 20유로가 일수벌금이다. 법원은 범죄만 보고 며칠 치 벌금이라고 선고한다. 그러나 같은 5일 치라도 검찰이 받아내는 벌금은 각각 1000유로와 100유로로 차이가 난다.
▷수입에 관계없이 정해지는 벌금은 같은 액수라도 빈부의 차이에 따라 느껴지는 징벌의 강도가 다르다. 게다가 형법이 함부로 바꾸지 못하는 기본법인 까닭에 벌금 액수는 시대의 돈 가치를 따라잡지 못해 일부 가난한 사람을 빼고는 부담이 크지 않아 액수 자체로는 형벌의 의미를 상실한 경우가 적지 않다.
▷더불어민주당과 법무부가 어제 재산비례벌금제를 제안했다. 참신한 제안인 것처럼 내놓았으나 실은 해묵은 논란거리다. 2004년 노무현 정부 시절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채택을 심도 깊게 논의했으나 무산됐다. 개인 소득이 정확히 얼마인지 파악하기 어려워 투명하게 소득이 잡히는 봉급생활자만 벌금을 많이 내는 제도가 될 수 있고, 재산 전체가 아니라 소득만 가지고 따지는 것이 공정하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당정이 정말 현행 벌금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다면 개인의 자산과 소득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부터 갖춰야 할 것이다. 재산 상황은 수시로 바뀌고 죄를 범할 때마다 새로 재산 상황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갑작스러운 제안이 진정성 있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