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착인 줄 알면서도 임명 강행한 與 결국 曺정리하고 기득권 청산 이벤트로 민중 對기득권층 대립구도 심화 노릴 듯 與는 정치실점 만회한다 해도 계층 간 불신… 리더십·공정경쟁 신뢰 상실은 어쩔 건가
이기홍 논설실장
문재인 대통령도 조국 임명 강행이 패착(敗着)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누가 뭐라든 내 소신대로 한다’가 트레이드마크인 문 대통령이지만 이번엔 적잖이 흔들렸던 것 같다. 임명 강행이 ‘까먹는 게임’이 될 것임이 훤히 내다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임명 강행을 택한 것은 항복(임명 취소)을 택하면 조국 개인을 우상시하는 핵심 지지층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여권 책사들의 선거공학적 분석이 ‘마이웨이’ 본능에 불을 지폈을 것이다.
임명 강행 전날 밤 당정청 고위 회의에서는 내각과 청와대의 고위급 인사 2명이 임명 강행에 무리가 따른다는 의견을 개진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당과 청와대 관계자들은 견고한 핵심지지 세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범진보층, 그리고 한일 갈등 정국이 내년 총선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점 등을 들어 임명 강행을 고집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런 논리를 편 것은 훗날 ‘탈(脫)조국’시에도 쓸 수 있는 양수겸장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가 지나고 임명 강행 열흘이 지나도 조국 사태가 사그라들지 않는 상황이지만 집권세력도 예상 못 한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임명을 강행한 건 결국은 만회가 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만회 시나리오는 ‘여권 내 기득권 청산 이벤트와 세대교체 → 선거법 개정을 통한 좌파 연대 → 무당파로 이탈한 지지층 재흡수를 통한 정권 재창출’의 구도일 것이다.
하지만 설령 문 대통령은 그런 시나리오대로 실점을 어느정도 만회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한국 사회가 조국 사태로 인해 받은 심대한 폐해는 오랫동안 만회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 폐해는 첫째, 기득권층에 대한 대중의 혐오와 계층 간 불신의 심화다. 조국 가족이 누려온 특권이 드러나면서 ‘기득권층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특권을 누리고 있구나’ ‘역시 우리 사회는 썩었다’…등등 혐오·반감이 더 깊어졌다.
셋째, 공정한 경쟁 시스템에 대한 신뢰 상실이다. 경쟁 과정이 공정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어야 결과에 승복할 텐데, 조국 딸이 입시생이던 시절엔 그런 방법이, 또 다른 시절엔 또 다른 형태의 방법이 동원돼 특권층들은 어느 시대든 항상 나무에 먼저 올라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순간 공동체의 기반은 무너진다.
그럼에도 집권세력엔 조국 사태가 필패(必敗)의 사건은 아닐 수 있다. 그들이 예상했던 대로 민주당 이탈층은 부동층으로 남고 한국당으로는 가지 않고 있다. 여권은 적당한 시기에 조국을 정리하고 대대적인 기득권 청산 모드로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당내 386 기득권으로 불리는 인사들도 자진불출마 선언 등의 형식을 통해, 도마뱀의 꼬리가 ‘나를 잘라 주십시오’ 하듯이 당 쇄신에 자기 목을 내놓을 것이다. 그들은 그런 집단이다. 지도부가 결정하면 기꺼이 시위를 주도하고 감옥행을 택했듯이 자기를 던질 줄 안다. 공천을 포기해도 진보진영의 재집권이 자신의 번영을 뒷받침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더구나 조국 사태가 심화시킨 기득권층의 반칙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집권세력에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당장은 집권세력과 가면 벗겨진 강남좌파의 부도덕성에 실망한 중도성향 중산층들이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득권에 대한 서민 대중의 더 깊어진 혐오감이 선거에서 좌파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보수진영이 조국만 물러나면 그걸로 승리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여든 야든 조국으로 상징되는 기득권·특권·반칙과의 단절과 청산을 과감히 보여주지 못하는 쪽이 패자가 될 수 있다.
조국 사태로 대한민국 공동체는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받았지만 이 사태를 초래한 집권세력은 기층민중 대(對) 특권층 대립 구도를 심화시켜 전화위복의 역전 득점을 노릴 것이다. 조국 논란이 조국 사태라 불려 마땅한 이유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