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에 오른 ‘드론 위협’
김재형 산업1부 기자
“저한테 두 시간만 주면 드론을 원격조종용으로 바꿔 무기처럼 조작할 수 있습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사물인터넷(IoT) 전문가는 최근 발생한 ‘사우디 테러’에 활용된 드론처럼 국내의 민간용 드론을 조작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국내 항공안전법은 조종자의 시야 범위를 넘어서는 ‘비가시권 비행’을 금지한다. 하지만 통신망과 연동하면 원격조종을 통해 시야를 넘어서는 장거리 비행을 하면서 무기로 악용할 수 있다.
그는 “시중에서 모터나 프레임 등 드론 부품을 구하기가 쉬워 마음만 먹으면 불법 개조해 위험한 화학물질을 운반하는 ‘머리 위 폭탄’으로 바꿀 수 있다”고도 했다.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레저·상업용 드론이 언제든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섬뜩한 충고였다.
사실 ‘무인기’를 뜻하는 드론은 애초에 군사용으로 탄생했다. 제1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개발된 미제 무인폭격기인 케터링버그가 시초로 꼽힌다. 현재 일반인이 취미로 애용하는 드론과의 차이는 외형이 프로펠러 형태가 아닌 비행기와 유사하다는 정도다.
이 때문에 드론이 악용될 가능성을 막는 안전·보안기술 도입이 시급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교통·물류 분야를 중심으로 빠르게 상업화의 길을 걸어온 드론의 안전성이 다시 쟁점 이슈로 떠올랐다.
○ 한국도 민간 드론 1만 대
그간 드론은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해 미래 기술로 꼽히며 산업으로 성장해왔다. 물류나 교통 분야를 중심으로 이미 세계 굴지의 기업들은 앞다퉈 드론시장에 뛰어들었다.
세계 최대 물류회사인 DHL은 2013년 12월부터 독일에서 의약품 배달에 드론을 적용했다. 도미노피자는 2016년 뉴질랜드에서 드론으로 피자 배송 서비스를 제공했다. 아마존은 6월 배송용 드론을 공개하며 “몇 달 내 상용화”를 공언했다. 글로벌 차량공유업체인 우버도 하늘을 나는 드론택시 ‘우버 에어’의 출시 목표 시점이 2023년이라고 밝혔다.
국내에서 드론 및 부품 매매 거래와 관련된 시장 규모는 2017년 기준 700억 원 수준으로 아직은 초기 단계다.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미국 드론회사인 톱 플라이트와 차세대 이동수단에 대한 공동연구를 진행하기로 하는 등 드론에 대한 투자가 이제 막 꽃피는 단계다. 이달 초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가 민간협의체를 구성해 드론택시와 같은 미래형 개인 비행체 산업 활성화에 나서는 등 정부도 드론산업 육성에 시동을 걸었다.
국내에서도 드론이 출몰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이달 19일 기준 국내에 등록된 민간 드론은 1만 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6월 기준 지방항공청 등 당국에 등록된 드론 기체 수는 모두 9342대다. 2015년 925대에서 시작해 4년 만에 10배로 늘어났다. 미신고 기체까지 합치면 이미 1만 대를 훌쩍 넘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항공법상 영리 목적 구입자는 당국에 무조건 신고해야 하지만 비영리 목적의 12kg 이하 소규모 드론은 신고 의무가 없다.
드론업계 관계자는 “레저용 드론은 대부분 (신고 의무가 없는) 12kg 이하라 당국에 등록된 대수보다 최소한 배 이상은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 불법 비행 늘어…항공기와 충돌 시 새보다 위협적
항공법상 공항 근처에서는 드론을 띄울 수 없다. 하지만 최근 공항 관리자들은 공항 인근에서 무단 비행하는 드론이 늘어 이를 적발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항공법 등을 무시하고 조종자가 무심코 띄운 드론을 쫓아내고 단속하기 위해 진땀을 쏟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국내 공항의 분위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신라대 드론 관제센터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이달 16일까지 김해공항 인근에 드론이 무단으로 출현한 횟수는 1388번이었다. 이 관제센터는 SK텔레콤과 드론 솔루션기업 한빛솔루션, 육군53사단 등이 참여해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불법 드론 공동 대응 시스템 및 체계’를 마련했다. 불법 드론을 탐지해 추적해서 무력화하는 ‘안티 드론 시스템’이다.
해당 시스템으로 불법 비행한 드론을 분석한 결과 이들의 평균 이동 거리는 3980m였다. 특히 사람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고도인 150m 이상 비행이 236건(17%)에 이른다. 대부분의 공항은 육안으로 불법 드론을 감시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불법 비행하는 드론이 상당하다는 의미다. 이를 전국 15개 국내 공항으로 넓혀 계산해 보면 감지되지 않는 드론의 무단 비행은 1년에 5000여 건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 활용과 안전 균형점 찾아야
전남 영광경찰서가 비행금지구역인 한빛원전 인근 가마미해수욕장에서 8차례 드론을 띄운 이모 씨(48)를 17일 적발하기까지 한 달 반이 걸렸다. 이 씨는 7월 30일부터 비교적 눈에 잘 띄는 시간대인 대낮에 907g의 경량 촬영용 드론을 주로 띄웠다. 그런데도 경찰은 인근 폐쇄회로(CC)TV 수십 대를 확인하고 대대적인 인력을 투입해야 했다. 현장 적발을 하지 않는 이상 현재로선 사실상 신고가 들어온 지역 일대의 CCTV를 뒤져 신고 시간에 해당 장소에 있었던 사람을 추적하는 것 말고는 단속할 방법이 없다.
최근 들어 드론의 불법 비행이 성행하는 곳 중 하나가 원자력발전소 인근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김종훈 민중당 의원이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 12월 이후 원전 인근에서 드론이 출몰한 건수는 13건이다. 이 중에 10건이 올해 확인된 불법 비행이고 대다수는 누가 어디서 드론을 날렸는지 확인하지 못한 ‘원점미확인’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항뿐만 아니라 원전 인근에서도 드론을 불법 비행시킨 조종자를 찾기 위한 경찰의 분투가 이어진다. 전남경찰청 관계자는 “사우디 테러 이후부터는 원전 인근에 비행금지구역 안내판과 현수막을 설치하고, 불법으로 드론을 날린 조종자를 찾기 위해 대테러 작전을 방불케 하는 점검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드론의 불법 비행을 신속히 적발하기 위해 기체 신고의 의무조항인 ‘비영리일 경우 무게 12kg 이상’ 규정을 없애고 모든 드론을 당국에 등록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해당 무게 기준은 드론산업 초창기 농업용 드론의 무게를 감안해 만든 것이다. 소형·경량 드론이 많아지는 지금의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 등록된 드론이 무단 비행을 하다가 등록번호 등이 식별되면 조종자가 누군지 손쉽게 확인된다. 국토부는 드론 분류체계를 바꿔 250g 이상의 기체를 당국에 등록하게 하는 가이드라인을 현재 검토 중이다.
기준을 바꾸는 것과 함께 불법 비행하는 드론을 감지해 즉시 무력화하는 안티드론 기술 개발과 중앙 관제 시스템 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티드론에는 드론 조종 시에 쓰이는 주파수(RF)를 감지하거나 레이더를 활용해 드론의 위치를 찾는 방법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신라대와 KAIST 등이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황광명 신라대 공공안전정책대학원 교수는 “안티드론 기술 개발과 함께 지방항공청이나 원전 등으로 파편화된 관제 시스템을 중앙으로 통합해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 사우디의 드론 테러 때문에 드론산업 자체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드론은 IoT 기술과 결합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로운 물류 혁명의 주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처럼 재난 현장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느 때보다 드론의 안전성이 부각되는 요즘 보안 안전성을 높이면서도 드론 사용을 활성화할 공생의 지점을 찾아야 한다.
김재형 산업1부 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