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동아DB
전자기타 한 줄과 세 손가락 건반 코드로 전주가 시작됩니다. 한 겹씩 화음이 쌓이더니 갑자기 ‘꽈광’하고 관악기 세션이 들어와 음계는 끝없는 우주로 팽창됩니다. 단 8마디 만에 일어나는 기적이죠. 모리스 화이트가 요란한 옷을 입고 엉덩이를 실룩거리다가 짝다리를 짚고 침을 뱉듯 “Do you remember?(기억하나요?)” 묻습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노래의 시작이죠. AFKN ‘솔 트레인’에서 흑백으로 이 영상을 처음 봤을 때의 전율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냥 디스코가 아니라 환상적인 예술이었으니까요. 비지스가 주연했던, 엉망진창이었던 영화 ‘서전 페퍼스 로운리 하트 클럽 밴드’에서 ‘갓 투 겟츄 인투 마이 라이프(Got to get you into my life)’로 유일하게 창의적인 리메이크를 들려주셨던 일명 ‘지풍화(地風火)악단’ 형님들의 또 하나의 명작이었죠.
가식을 던져버리고 진정한 사랑을 느끼며 영혼의 울림에 따라 노래했던 9월 21일의 밤을 기억하냐는 상투적인 노랫말은 매력적이고 정확하게 붓점을 살리는 탁월한 연주의 축복 때문에 별로 흠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곧 필립 베일리의 천사 같은 고음의 가성이 나오니까요. 가사는 “바디야, 어쩌구 저쩌구”인데 아무런 뜻도 없는, 그냥 리듬을 타는 지껄임이죠.
이 노래는 분명한 의도와 계획을 세우고 만들어진 ‘스튜디오 노래’, 여러 조각을 모아 짜깁기 한 노래입니다. 노래를 만드는데 한 달이 걸렸다고 하죠. 따로 있던 존재들이 서로에게 잘 어울리는 짝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뜻 없는 “바디야”를 의미가 있는 가사로 대체하려 했지만, 그 리듬을 살릴 수 있는 가사를 찾을 수 없었답니다. ‘21일’도 그냥 리듬에 가장 잘 맞아서 21일이 됐던 것처럼 말이죠. 제 아이들도 영화 ‘언터처블’ 때문에 이 노래를 알게 됐는데 기억나는 부분을 물어보니 “바디어, 어쩌고저쩌고~!”라고 하더군요. 인간에게는 논리와 사고보다는 감각과 감정이 우선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결국 감정의 경험으로 얻어지고 그 경험 대부분은 관계에서 옵니다. 부부의 사랑도 긴 시간을 거치며 우정과 닮아가죠. 삶의 가을이 될수록 친구가 필요하지만 찾기는 더 힘들어집니다. 결국, 친구는 나의 작품이죠. 그리고 친구로 인해 세상이 아름답고 살 만해지는 것이죠. 사실 절친한 친구를 지켜주지 못했던 저로서는 이 부분에서 말할 자격은 없지만…….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