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존 윌리엄스 지음·김승욱 옮김/396쪽·1만3000원·알에이치코리아 ◇해가 지는 곳으로/최진영 지음/208쪽·1만3000원·민음사 ◇어제는 봄/최은미 지음/176쪽·1만1200원·현대문학 ◇깊이에의 강요/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김인순 옮김/100쪽·1만800원·열린책들
벌써 가을이고, 이는 올해도 다 가버렸다는 말과 같다. 연말 특유의 흥청거림 때문에 정신없이 지나가 버리기 일쑤인 겨울보다 되레 가을이 지난 삶을 얼추 정리하기에 더 낫다. 그런 계절의 소설로 ‘스토너’를 소개한다.
주인공 스토너는 운명에 분연히 맞서는 사람이 아니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다 바치지 못한다. 기민하고 재바르지 않다. 그는 그저 타인의 악함이나 자신의 실수로 만들어진 결과에 맞춰 산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 같다. 꼭, 당신과 나의 삶 같기도 하다. 죽음 앞에 선 스토너는 유언 대신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네 인생에) 너는 무엇을 기대했나?” 이러한 질문이야말로 가을과 제법 어울린다. 아파트와 자동차, 통장 잔액…. 그런 것들에 기대어 우리는 사는 걸까.
소설은 답보다는 질문을 거듭하는 장르라서, 따로 해설은 없다. 다만 조금 정리는 될 것이다. 내가 사는 공간과 시간에 대해, 거기에 발붙인 우리의 인생에 대해. 그것을 소설의 총체성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해가 지는…’은 새로운 매력까지 선사한다. 미지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살아남은 자들은 안식처를 찾아 길 위에 오른다. 시·청력을 잃은 동생을 지키며 걷는 한 여성, 일가친척과 함께 집을 떠나온 또 다른 여성. 두 사람의 교감과 사랑은 이 소설의 가장 큰 동력이다.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공간을 앞에 둔 표현이라기엔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두 사람에게도 그리고 읽는 이에게도 아름다운 세계가 끝내 다가든다.
저무는 계절, 오늘도 잘 견뎌야 할 때라면 누군가와 ‘해가 지는 곳으로’ 걸어 봐도 좋겠다.
○ 이민희 문학과지성사 편집자
겨우 이것밖에 못 하냐, 결혼은 언제 하느냐…. 우리를 흔드는 남의 말은 사실 ‘그냥 한번 던져본 것’일 경우가 많다. 새겨들어야 할 말도 있겠지만 일일이 신경 쓰는 건 정작 나에게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무릇 귀는 열어두고 입은 다물어야 한다고들 하는데, 가끔 귀를 닫을 때도 있어야 한다고 소심하게 주장해본다. 작은 배타심은 때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한다.
정리=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