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소식에 무관심한 한국 사회… 그사이 불황은 이미 ‘시작된 위협’ 실업-양극화는 정부 정책 안 먹혀 日이 지난 터널, 이제 들어가는 韓… ‘뼈 깎은’ 히타치 사례 곱씹어봐야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아무도 이번 현대차 노사 합의가 대기업 노사관계에 새로운 획을 그을 수 있을 것인지, 노사 협의가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떤 조건이길래 노사가 다 만족했는지 심층보도하지 않는다. 정치권에서도 축하와 격려의 메시지가 나올 법한데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현대차 노사 합의 보도가 나온 이틀 뒤 현대중공업은 또다시 파업에 돌입했다. 현대차에서는 가능했던 일이 왜 현대중공업에서는 가능하지 않은지에 대한 전문가 인터뷰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이번 현대차 노사의 평화적 협상으로 드디어 한국 기업의 적대적 노사관계가 상생의 노사관계로 전환되었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상생의 노사관계가 절실한 상황에서, 하나의 전기가 될 수도 있는 사건을 이토록 차갑게 흘려보내는 현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의아하다. LG디스플레이의 희망퇴직에 대한 언론의 무관심에는 더욱 참담해진다. LG디스플레이의 문제는 무엇이었는지, 재교육을 통한 재배치는 불가능했는지, 한국 기업의 국제 경쟁력이 전반적으로 저하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아무도 묻지 않고 따라서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매출액 기준 일본 10대 기업 중 하나인 히타치는 2008년도 결산에서 7870억 엔이라는 일본 제조업 사상 최악의 순손실을 보고했다. 히타치의 100년 라이벌인 도시바 역시 같은 해 4000억 엔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그러나 2009∼2012년에 1만 명이 넘는 직원을 해고해야 했던 히타치는 최근 수년 창사 이래 최고의 영업이익 기록을 연거푸 경신하고 있다. 반면 도시바는 2016년도 결산에서 9660억 엔의 순손실을 보고함으로써 히타치의 8년 전 기록을 가볍게 갈아 치웠다. 히타치는 화려하게 부활한 반면 도시바는 생존 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무엇이 이 두 100년 기업의 운명을 갈랐을까? 히타치가 ‘새로운 중점사업의 육성’을 위해 ‘아픔을 동반한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동안 도시바는 분식회계를 통해 경영진의 무능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히타치 부활의 일등공신으로 불리는 가와무라 다카시 사장은 히타치의 개혁이 20년만 빨랐다면, 2010년에 그렇게 많은 직원을 내보내는 아픔은 없었을 것이라고 자책한다. 지금 한국 경제는 20년 전 일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기업은 활력을 잃고 있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잃고 있다. 20년 전의 일본이 그랬듯 지금 한국은 서서히 침몰하는 거함이다. 그래서 바로 지금, 아픔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혁이 필요하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