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 몰려온다” 항공업계 불안… ‘관광 호황’ 전망 맞춰 항공기 늘려 환율-유가 오르고 日 여행 보이콧… 불과 1년 만에 180도 분위기 반전 탑승률 떨어져 비용만 눈덩이… 여행수요-지출 감소 추세에 침울 파산-구조조정 소문까지 돌아… 적자노선 중단하며 ‘버티기’ “정부 나서 해외노선 추가 확보를”
변종국 산업1부 기자
요즘 항공업계의 상황은 이 두 단어로 요약된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국민 두 명 중 한 명은 해외여행을 간다”는 말이 나오면서 항공 산업은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했지만 불과 1년 만에 전망이 180도 바뀐 것이다.
올해 2분기(4∼6월) 항공사들의 성적표는 참담하다. 대형 항공사 2곳과 저비용항공사(LCC) 6곳 모두 적자를 냈다.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에 고유가까지 겹치면서 항공사들의 비용은 급증했다. 여기에 수요 예측 실패와 한일 갈등으로 일본 여행 보이콧까지 겹치면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악재가 일거에 터졌다는 분위기다. 항공업계에서는 버티지 못한 항공사들이 시장에서 퇴출되고 결국 인수합병(M&A)이 이뤄지면서 항공시장이 재편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제주항공의 수뇌부들도 최근 비용을 30∼40% 줄이기 위한 긴축 경영에 돌입했다. 올해 6대의 항공기를 도입하면서 가장 공격적으로 항공기를 늘려온 제주항공조차 내년에는 최대 2대 정도만 들여올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업계는 탑승률이 떨어지는 적자 노선도 과감히 정리 중이다. 이스타항공은 지방발 일본 노선을 모두 없앴다. 티웨이항공도 무안발 국제선을 모두 폐지했다. 에어부산은 대구공항 국제노선 9개 중 7개를 중단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자고 일어나면 노선 하나가 사라지고 있다. 가격 경쟁을 하다가 ‘안 되겠다’고 싶은 항공사들은 손을 들고 나오다 보니 ‘러시안 룰렛’을 보는 기분”이라고 전했다.
최근 항공사들은 일본 노선의 대안으로 중국과 대만, 베트남 등 동남아 노선에 항공기를 취항하고 있지만 이마저 수익을 내기 쉽지 않다. 국내 LCC에서 노선 운임 업무를 맡은 한 직원은 “여행객은 늘고 있지만 경쟁 과열로 평균 항공 운임이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다”며 “치킨게임의 무대가 동남아로 옮겨진 것뿐”이라고 말했다.
항공업계의 위기가 갑자기 시작된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 국내 항공업계의 대표는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항공시장이 조만간 정체기에 접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해외로 출국하는 여행객 절대 수치는 증가하지만 증가폭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통계를 보면 올해 상반기(1∼6월) 항공기 이용객은 6156만 명으로 반기 기준 역대 최대다. 매년 상반기 기준으로 항공기 이용객은 2015년 4350만 명을 기록한 이후 2016년( 4980만 명), 2017년(5308만 명), 2018년(5807만 명)에 꾸준히 늘었다. 그러나 전년 대비 증가폭을 보면 2016년에 전년 대비 630만 명이 늘어난 이후 2017년(328만 명), 2018년(499만 명)을 거쳐 올해는 증가폭이 349만 명으로 뚝 떨어졌다.
반면 항공사들은 매년 항공기를 늘려 왔다. 상반기 국내 항공사들의 국제선 공급석은 3747만 석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8.2% 늘었다. 그러나 실제 국제선 탑승객은 3105만 명으로 이 기간에 6.8% 증가하는 데 그쳤다. 탑승률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1.1% 줄었다. 공급은 늘어나는데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항공업계에 구조적인 불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과잉 공급에는 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보고 LCC가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선 것도 영향을 끼쳤다. 국내 LCC들은 2000년대 중반 출범하면서 항공기 1, 2대로 시작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현재 제주항공 45대, 진에어와 티웨이, 에어부산은 각 26대, 이스타항공 22대, 에어서울은 7대를 소유했다.
설상가상으로 유가와 환율이 오르는 상황에서 한일관계에 따른 일본 여행객 감소는 항공사들엔 직격탄이 됐다. 한 항공사 임원은 “항공 수요 감소는 항공사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저 버티면서 경제가 좋아지길 기도만 하고 있다”고 심정을 전했다.
○ “항공업계 지원해 달라”… 업계 읍소에 난감한 국토부
그러나 국토부는 “제주항공은 혼잡하니 안전상의 이유로 슬랏을 더 줄 수 없다”고 선을 그어 왔다. 그런데 갑자기 항공사 2곳에 제주공항 슬랏을 준다고 하니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토부가 신규 LCC 업체인 플라이강원과 현재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 주도로 매각이 진행 중인 아시아나항공 자회사인 에어서울에만 특혜를 주는 것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국토부가 항공업계의 어려움을 예상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LCC 허가를 내줬다는 비판을 피하고 아시아나의 몸값을 올려 매각을 돕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 항공사 대표는 “유보 슬랏의 배분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해야 한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특정 항공사에만 혜택을 주는 건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다른 LCC 업계도 국토부에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본보가 입수한 ‘항공 현장점검 및 CEO 안전간담회’ 회의록에 따르면 항공사 대표들은 정부에 △제주∼김해공항 추가슬롯 활용 △비행금지시간 완화 △이착륙료 인하 및 지원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국토부는 주민 반발과 특정 업계 지원에 따른 국민 정서 괴리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 국내 항공 시장 재편 시작되나
당분간 항공업계의 전망은 밝지 않다. 여행 수요 및 지출이 점점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동향지수(CSI)의 소비지출전망에서 여행비 지출전망지수는 87로 조사됐다. 7월보다 5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2013년 12월(87)이후 가장 낮다. 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2017년 여행비지수가 최대 99에 이르던 것에 비하면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이다. 최근 경기 부진의 여파로 여행 경비부터 줄이려는 가계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다. 결국 향후에도 국내 소비자들이 여행에 지갑을 열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 항공업계의 어려움은 길어질 수 있다.
항공업계에서는 향후 업계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중이다. 이미 “어느 기업이 어디를 인수하기 위해 접촉한다” “자본 상태가 심각해 조만간 회사 문을 닫는다” 같은 각종 소문이 무성하다. 실제로 국내 한 대기업은 LCC 한 곳과 접촉해 투자와 인수를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문길 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본 여행객 감소 등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 수요 감소 및 항공사 비용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항공업계에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한 만큼 해소 방안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방민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미국과 유럽, 동남아의 항공업계도 공급 과잉 속에 여행수요가 못 따라오면서 시장이 재편됐다. 한국도 업계 성장에 정체가 온 이상 시장 재편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의 위기는 단순히 항공사들만의 어려움은 아니다. 국가 기간산업인 항공산업 자체의 위기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더욱이 항공산업은 고용 창출 능력이 작지 않다. 항공기 1대가 들어오면 LCC의 경우 약 100개의 고급 서비스 분야의 일자리가 창출된다. 여기에 공항 인근 관광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정부가 해외 추가 노선 확보에 적극 나서면서 공항 인근 지역민들을 설득해 비행금지 시간도 한시적으로 풀어주는 등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항공업계 역시 단기적으로 구조조정 및 비용 절감은 물론이고 적극적인 M&A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관광업계와 협력해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인바운드 여행객을 늘릴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점 역시 경쟁력 강화에 필수 요소다.
변종국 산업1부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