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과 화약의 등장으로 갑옷이 사라지자 군대는 강함 대신 컬러를 택했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 유럽군은 군복에 원색을 도입했다. 영국군을 ‘레드 코트’라 부르듯 나라마다 상징색이 생겼다. 당시 기록에서는 나라 이름 대신 흰색, 푸른색, 붉은색, 회색의 군대라 불렀다.
원색의 군복을 입으면 소총병의 표적이 되지 않았을까. 18세기까지는 총의 위력이 떨어져 근접 사격을 해야 했고, 라인 배틀 시대의 병사들은 어차피 뻣뻣하게 서서 밀집대형을 이루고 전진했기에 원색이든 아니든 달라질 게 없었다.
그럼에도 일부는 이 조치를 맹비난했다. 프랑스가 붉은색 바지를 포기하자 “붉은 바지가 바로 프랑스다”라며 분노했다. 관념으로 포장한 과거에는 그랬을지 모르나 저격병과 기관총, 대포가 지배하는 전쟁에서 붉은 바지는 피 묻은 바지에 불과하다.
너무나 뻔하고 당연한 일인데 수천, 수만 명의 피를 묻혀야 오류가 수정된다. 인류는 뛰어난 두뇌, 지성과 상식을 지녔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인간을 우주로 보내고, 생명 창조까지 하게 됐어도 피바다가 되어야 붉은 바지를 갈아입는 어리석음은 좀체 개선이 되지 않는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