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어른을 이기려 드는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나는 아이에게 원래 지식이나 이론은 밝혀진 데까지 배우고 알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답으로 보고 정답은 정답이고 오답은 오답이라 말해줬다. 아이는 반가워하며 그러면 자기가 맞고, 선생님은 틀린 것이 맞냐고 물었다. 나는 “맞아. 선생님이 틀렸어.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선생님이 창피했다는 거지. 선생님은 틀렸다는 것을 모른 게 아니라 창피했던 거야”라고 말해줬다. 아이는 갸우뚱하며 “그래요? 틀린 건 틀렸다고 말하면 되는 거잖아요?”라고 물었다. 아이에게 답해 주었다.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해야 하는 것인데,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마다 좀 달라.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그릇이 큰 거야.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꼭 어떤 면에서의 그릇이 다 큰 것은 아니야. 어떤 사람은 창피할 때 더 화를 내고 막 우기기도 해. 너희 선생님은 너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창피했던 것 같아.” 아이의 마음이 한결 누그러졌다. ‘선생님이 나를 강압적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창피했던 거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많은 아이들이 교사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한다. 그 교사는 어쩌면 정말 이 아이가 미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미워하는 마음 전 단계는 아마 창피였을 것이다. 이럴 때 나는 아이에게 “학생이 선생님께 그러면 되니? 선생님 입장을 배려했어야지”라고 나무라지 않는다. “너는 학생이고 선생님은 어른이잖아. 중학교 1학년이 선생님의 부모나 스승이 될 수는 없거든. 수업 자료가 잘못됐으면 수정하는 것이 맞아. 다음부터는 수업이 끝나고 조용히 따로 가서 말하는 것이 좋긴 하겠어. 그렇게 했는데도 선생님이 기분 나빠하면 그땐 어쩔 수 없는 거야. 선생님 속이 좁은 거지. 너는 그 정도 하면 된 거야” 하고 말해 준다.
요즘 우리에게는 자존감이 화두이다. 부모들은 누구나 내 아이를 자존감이 높은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 한다. 그런데 아이의 자존감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아이가 부모를 이겨봐야 한다. 부모를 무시하고 싸워서 이겨먹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자신의 타당함과 정당함을 순순히 인정받아 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을 말한다. 아이가 “엄마도 그러잖아요” “아빠라고 매번 잘 지키지 않잖아요”라고 할 때, “맞아, 나도 못 지킬 때가 있구나. 나도 좀 그런 면이 있어. 그만큼 이것이 좀 어려운 부분인가 보다. 그런데 이것은 중요한 거야. 내가 너를 가르쳐야 하니, 나도 좀 더 노력을 해야 되겠다”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이것은 엄마가(혹은 아빠가) 잘못 생각한 것 같네. 네 말이 맞다” 식으로 나의 타당하지 않음을 편하게 인정해 줘야 아이가 부모를 딛고 올라간다. 그런 모습을 잘 보여줘야 아이가 부모보다 큰 사람이 된다. 이것이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는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항상 올바른 것을 가르쳐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올바른 것을 가르쳐주는 과정에서 언제나 싸운다. 아이가 잘못했다는 것을 끝까지 인정시키려고 든다. 그래서 끝은 언제나 “그러니까 엄마(혹은 아빠) 말이 맞지”로 끝난다. 부모가 이기고 끝나는 것이다. 항상 부모가 이기고 끝나는 싸움, 그 싸움에서 아이는 가르침을 받기 어렵다. 그 싸움에서 아이의 자존감은 높아지기 어렵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