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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이 변한 걸까, 내가 변한 걸까[이재국의 우당탕탕]〈26〉

입력 | 2019-09-24 03:00:00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요즘은 왜 김동률 노래가 안 좋을까?”

술자리에서 친구가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낸 노래는 별로 반응이 없었다. 예전에는 신곡을 기다리고, 나오자마자 열광했는데…. “김동률이 변해서 그런 거 아닐까?” “아니야. 우리가 나이가 들어서 그래.” 의견이 분분했다. 왜일까 고민하던 찰나, 오래전 추억이 소환됐다.

1994년 가을, 친구의 여자 친구 초대로 여대 기숙사 오픈하우스에 갔다. 아끼던 옷을 꺼내 입고 머리에는 무스를 잔뜩 바른 채. 별다를 것 없었지만 여대 기숙사라는 단어만으로도 왜 그리 떨리던지. 그리고 그녀의 룸메이트들이 준비한 다과를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오늘 초대가수로 ‘전람회’가 온대요. 남자들은 별로 안 좋아하죠?” “저 전람회 좋아해요. 특히 김동률 목소리.” 전람회를 직접 본다는 생각에 긴장이 됐고, 방울토마토를 먹다 그만 과즙이 내 셔츠에 튀고 말았다. “어머, 괜찮아요?” 옆자리 여학생이 손수건을 건네줬다. 그리고 얼마 후 전람회 공연이 시작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고 다같이 기숙사 앞마당으로 달려갔다. ‘기억의 습작’을 부르는 김동률의 목소리는 가을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공연이 끝날 무렵 내게 손수건을 줬던 여학생이 조용히 쪽지를 건넸다. 삐삐 번호와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삐삐 음성사서함에 서로의 목소리를 녹음하며 ‘썸’을 탔다.

썸 탄 지 100일 되던 날 신촌에서 술을 마셨다. 생맥주 몇 잔에 취해 골목길을 한참 걸어 다녔다. 그리고 어느 외등 아래서 그녀가 나에게 입맞춤을 했다. 난 양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녀의 허리를 껴안았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나를 밀쳐냈다. “나 그런 애 아니거든!” 그리고 혼자서 뛰어가 버렸다. 난 뭐를 잘못한 건지 몰라 한참을 서있다 공중전화로 가서 사서함에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남겼지만 답이 없었다. 몇 번 더 음성 메시지를 남기고 그녀의 학교 앞에도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삐삐 시대를 끝내고, 시티폰과 PCS(개인휴대통신) 시대를 거쳐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했다. 가끔 전람회나 김동률 노래를 들으면 그녀가 생각났지만 찾을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종로 피맛골 골목길에서 거짓말처럼 다시 만났다. 2001년 가을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서로 놀랐다.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그해 가을, 김동률이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라는 노래를 발표했고 거리에선 매일 그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전화기를 만지작거렸지만, 그녀에게 연락은 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김동률 노래가 좋고, 김동률 노래만 들으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고, 김동률 노래만 들으면 추억거리가 많았는데 요즘은 왜 김동률 노래를 들어도 감흥이 없는 걸까? 김동률뿐이 아니다. 옛날 노래는 좋은데, 그 옛날 노래를 부른 가수가 요즘 부른 노래는 별로 와닿질 않는다. 그가 변한 걸까? 아니면 우리가 변한 걸까? 가을이니까, 다시 한번 김동률의 목소리를 만나봐야겠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