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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음악회, 밤엔 야시장… 재기 꿈꾸는 이화52번가

입력 | 2019-09-24 03:00:00

대학-건물주-상인 ‘삼각 협력’
발길 뜸해진 이대 정문 서쪽 골목
정부지원 받아 청년몰 들여오고 건물주는 임대료 인상 자제
책방-식당 등 늘면서 차츰 활기




23일 정오 서울 서대문구 이화52번가 상점가.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온 학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이화여대 정문 서쪽에 위치한 이화52번가는 지하철 2호선 이대역부터 이화여대 정문까지 이어지는 ‘메인 도로’에선 보이지 않는 뒷골목이다. 이곳의 분위기는 메인 도로와는 확연히 다르다. 화장품 가게 대신 독립책방과 다양한 종류의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메인 도로에서 쉽게 들을 수 있던 중국어나 일본어가 이곳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이화52번가는 2000년대 이후 이화여대 상권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이화여대 산학협력단에 따르면 점포 194개 가운데 77개(39.7%)는 아예 비어 있었다(2016년 5월 기준). 이곳에 위치한 한국철도시설공단 소유의 넓은 공터는 높은 철망으로 둘러싸인 채 방치됐다. 학생들이 지나다니기 꺼리는 곳이었다.

이 골목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건 2017년부터다. 이화여대 산학협력단은 서대문구와 함께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의 지원을 받아 청년몰 조성사업을 추진했다. 이 사업으로 만 39세 이하 청년이 창업한 22개 점포는 임차료, 인테리어 비용 등을 지원받았다. ‘이화여대’와 이곳 도로명 ‘52’를 합쳐 ‘이화52번가’라는 브랜드도 탄생시켰다.

다양한 시설도 생겼다. 거리 입구에는 ‘이화 52번가 상점가’라고 쓰인 간판과 상점가를 안내하는 지도가 설치됐다. 바닥에는 이화여대를 상징하는 배꽃 그림을 그려 넣었고 한국철도시설공단 소유 부지에는 ‘이화쉼터’가 설치됐다. 쉼터에서는 테이크아웃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됐고 연극과 음악연주회, 야시장 등 다양한 문화 행사도 열렸다.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2017년 10월 이곳 점포의 공실률은 5% 아래로 떨어졌고 유동인구는 30∼50% 늘었다. 청년몰 사업의 지원을 받아 지금까지 이곳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인 A 씨는 “현재 매출이 2016년 가게를 열었을 때보다 2∼3배로 늘었다”라고 밝혔다.

이화52번가 활성화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건물주와 기존 상인, 청년몰 상인의 의견이 달랐다. 이화여대와 서대문구는 상권 홍보가 필요하다고 여겼지만 건물주는 어지럽게 널린 전선을 지중화하는 데 예산이 투입되길 바랐다. 전선과 전봇대가 사라지면 미관이 개선돼 건물 가치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기존 상인은 각종 공사로 영업을 방해받는 한편 임차료가 오를까 봐 걱정했다. 이화여대 산학협력단은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보고 다섯 차례에 걸쳐 주민공청회를 개최했다. 청년몰 상인뿐만 아니라 기존 상인에게도 마케팅과 영업, 법률 지식 등을 교육했다. 이화여대 교수들은 기존 상인들의 가게를 찾아 사업 취지를 설명하며 신뢰를 쌓았다. 일부 건물주는 임대료를 동결했다.

이화52번가는 3년 전과 비교하면 분명 활기를 되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청년몰 사업 지원을 받았던 22개 점포 중에서 현재까지 영업하는 곳은 6개뿐이다.

이곳을 찾는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영업을 시작한 B 씨는 “손님 대부분이 이화여대 학생이라 방학 때는 극심한 비수기여서 임차료를 내기도 빠듯하다”며 “정부, 지자체의 예산이 지원된다면 거리 홍보에 쓰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에 따르면 이화52번가는 지난달 13일 ‘신시장 모델 육성사업―지역단체 협업사업’에 선정돼 상권 활성화를 위한 협력사업이 추진된다. 이 사업을 통해 외국인 대상 홍보물을 제작하고 상인과 주민, 대학생,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상권 활성화 관련 워크숍도 개최할 예정이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