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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발표-승진 ‘회사 일’에 치인 그대, 쉬어라

입력 | 2019-09-25 03:00:00

[홍은심 기자의 낯선 바람]번아웃 증후군




훈훈한 외모에 몸에 밴 친절함. 웃을 때 친근하게 느껴지는 반달눈을 가진 그는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잘나가는 외국계 금융회사에 다닌다. 회사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열정으로 30대 초반임에도 고속 승진으로 얼마 전 그는 과장이 됐다.

그의 팀장은 한손에 모닝커피를 들고 사무실에 들어섰다. 팀원들 자리를 하나하나 눈으로 빠르게 훑었다. 팀장의 눈길이 그에게 몇 초간 머물더니 이내 시선을 거두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팀장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에너지가 넘쳤던 그가 언제부턴가 눈에 띄게 말수도 줄고 기운이 없어 보인다. 자신이 불러도 멍하니 있다가 대답을 놓치는 일도 허다하다. 평소 팀원들에게 살갑기로 소문난 팀장은 그가 신경 쓰인다.

오늘도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짜증만 난다. 사실 짜증낼 힘도 없다. 이번 승진 평가에 너무 많이 에너지를 쏟은 걸까. 매일 야근에 평소 두 세배의 시간을 들여 발표 준비를 했다. 다행히 과장이 됐다. 하지만 긴장이 풀린 탓인지 결과 발표가 나자 그의 근육들과 세포들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며칠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벌써 두 달 넘게 컨디션이 돌아오질 않는다. 소화도 안 되고 두통도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 병원 검사도 받아봤지만 진통제를 먹으면 잠깐 괜찮아질 뿐 곧 다시 욱신거렸다.

퇴근길. 그는 무거워진 가방을 양손으로 잡으려 가슴 위까지 힘겹게 들어올렸다. 가방 안에는 프린트한 서류가 한 가득이다. 화장실도 안 가고 사무실에 종일 앉아 있었는데도 오늘 끝내려 했던 업무량을 거의 하지 못했다. 집에 가서 안개가 찬 것 같이 멍멍한 머리를 샤워로 식히고 나면 못 다한 일을 좀 할 요량으로 서류뭉치를 싸들고 가는 길이다.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 몸이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가방을 소파한 켠에 던져두고 침대에 몸을 잠시 눕히기로 했다. 가지고 온 일거리가 그의 머리를 누르는 것 같았지만 몸을 일으키기는 싫었다. 일을 해야 한다는 마음과 귀찮아 죽겠다는 마음이 느슨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동안 시간은 새벽 한 시가 됐다.

결국 그는 일은커녕 씻지도 못하고 잠이 들었다. 알람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났는데 몸이 무겁다. 오늘도 컨디션이 영 아니다.

우울증인가. 무기력해진 자신의 모습에 죄책감마저 든다. 시간을 쪼개서 살던 그다. 하루이틀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상태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 업무-개인 삶 분리하고 충분한 휴식 가져야… 하루 10∼20분 명상도 좋아 ▼

‘번아웃 증후군’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질병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업무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쉽게 겪을 수 있는 증상이다. 특히 평소 성실하고 업무에 지나칠 정도로 열심인 사람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면 번아웃 증후군이 나타나기도 한다.

번아웃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우선 자신이 현재 힘들다는 것부터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업무와 개인 삶을 분리시키고 충분한 휴식시간을 가져야 한다.

특히 일과 육아를 함께하는 워킹맘은 강제로라도 휴식을 취해야 한다. 번아웃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 중에는 쉬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 공원을 걷거나 친구를 만나 휴식의 시간을 가져야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하루에 10∼20분 매일 명상을 하는 것도 좋다.

조성준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